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ECM 클래식
1953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냉전 시기 공산주의 체제 헝가리에서 성장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András Schiff)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런던과 뉴욕시티를 거쳐,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시민권을 얻으며 활동의 범주를 넓혔다. (피렌체와 런던, 바젤에 자택이 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유명 레이블을 통한 다작의 음반들을 발매하며, “충분하다 할 정도를 넘어서는” 녹음 작업을 해 왔다는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들을 ‘독점’하다시피 음반으로 기록해 왔는데, 심지어 ‘한때는 소득 중 절반이 음반 판매 수익이었다’고 회상할 정도이다.
‘피아노가 노래하게 해야지, 피아니스트가 노래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작곡가가 남긴 ‘악보’라는 절대 존재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매개적 존재로서 연주자를 규정하는 대목에서는 “음악과 종교의 경계선은 무척이나 가늘고 미세하다”고 했던 한스 큉의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편으로 쉬프는 리흐테르(Sviatoslav Richter, 1915-1997)나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 1887-1982) 같은 앞선 세대 연주자들의 아우라를 높게 평가하며 ‘상업화 되어가는 요즘의 피아니스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위엄’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상업적 영역인 음반업계의 스타가 이런 말을 하다니 좀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ㅎ)
쉬프는 ECM 레이블과의 협업 과정에서 발매한 바흐 골드베르크 라이브 레코딩을 ‘성공작’ 중 하나로 언급하며, 스튜디오 녹음에 비해 훨씬 강렬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음악은 고요로부터”(2023, 독일어 원본2017)에는 그가 ECM의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 1943-)와 처음 만났던 시기가 2000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ECM의 홈페이지에는 1999년이라고 되어 있다. 쉬프가 언급한 골드베르크 음반은 2001년에 발매되었다.) 쉬프는 ‘만프레드의 원맨쇼’라고도 할 수 있는 ECM 특유의 방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서도 쓰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