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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09. 2024

1,000 권의 책을 나누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책 나눔

여덟 살에 처음 왕따를 당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의 테마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성인이 되어도 좀처럼 백조가 되는 일이 없다는 점만 빼고, 나는 늘 미운 오리 새끼였다. 심지어 마흔이 넘어서도 따돌림을 당했다. 다른 점은 SNS 상에서 이뤄졌다는 것. 나는 적의 정체도 알지 못한 채 따돌려졌다. 바스러질 듯 예민한 자아는 바로 상처 입었고,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었다. 다시는 SNS에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하고 싶어 시작했던 것도 아니었다. 출판사에서 작가의 책임 운운하며 SNS를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 세계에 들어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SNS에서 상처받는 건 나 혼자가 아니다. 카페인 우울증* 이나, 청소년들의 자살이 늘고 있는 것 또한 SNS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SNS를 하지 않는다고 세상에서 SNS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상처받는 곳이라면 그곳에 어떤 희망의 씨앗이라도 심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SNS가 시기와 질투, 자기 연민과 자학만 끌어내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 회복과 위로가 있는 곳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책 나눔


책 나눔은 그 작은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SNS에서 내가 나눌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가진 게 별로 없던 내게 그래도 몇 년 동안 열심히 읽은 책이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죽어도 책만은 나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는 일이었다.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종종 책을 빌려 달라고 했다. 한국책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이국 땅이라 빌려 달라는 이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빌려주고 나서 돌려받은 적은 극히 드물었다.


책을 돌려 달라고 말하는 게 어찌 그리 힘든지, 몇 푼 되지도 않는 책 한 권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게 몹시 쩨쩨하게 느껴졌다. 결국 당당하게 돌려달란 말도 못하고 늘 속만 끓이다 소중한 책들을 잃었다. 책 한 권 빌려주는 데도 이렇게 벌벌 떠는 내가 책을 나눠 줄 수 있을까. 몹시 회의가 들었지만, 눈 딱 감고 한 번만 해보기로 했다.


처음 나눔 할 책을 고를 때의 기준은 ‘사람들이 어떤 책을 좋아할까’가 아니라 ‘정말 없어져도 괜찮은 책인가’였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고른 책 10권을 모멘트에 올렸다. 내가 따돌림을 받고 상처받은 곳이 모멘트였기 때문에 모멘트에서 시작했다. 모멘트에 댓글로 신청을 받았다. 10권의 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책을 보내면서 울었다. 두 손이 벌벌 떨렸다. 차라리 새 책을 사주지, 내가 읽으며 흔적을 남겨둔 책을 보내는 게 나의 일부를 떼어 주는 것처럼 힘들었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책 나눔


소중한 책을 잃고 몹시 아파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절대 내게 관심을 주지 않던 사람들이 책 나눔을 받기 위해 댓글을 남겼다. 책을 받고 기뻐했다. 나눔 받은 책 덕분에 오랫동안 읽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하고 독서에 흥미가 생겼다고 전해 왔다. 나눔의 기쁨이 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눔 할 책을 고르는 일이 점점 즐거워졌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좋아할지, 어떤 책이 도움이 될지 고민하며 신중하게 큐레이션을 했고, 책에 대한 소개글을 적었다. 책 한 권 한 권 메모를 정성껏 쓰고, 티나 마스크팩 같은 작은 선물을 함께 보냈다. 배송비는 모두 내가 부담했다. 중국 내라면 어느 지역이든 관계없이 배송비를 내가 부담하고 책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책이 이제 850권을 넘었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책 나눔 #851~853


한 번 읽고 덮어두었던 책들을 나눔으로 떠나보내기 전에 꼼꼼히 다시 읽는 소중한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더듬으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동안 잊고 잇던 좋은 문장들을 다시 만났다. 가끔은 어렸을 때 두 아이가 남긴 흔적이나 내가 남긴 메모를 발견하기도 했다.


책 나눔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중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겨우 헌책을 나눈 것뿐이지만, 그렇게 나눔 받은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았고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책 나눔 _ 나눔 받은 분들의 글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매주 나눔 할 책을 고르고, 신청자를 기다리고, 택배를 부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외롭다. 자식처럼 소중한 아이들을 골라 마치 허공에 씨 뿌리듯 해야 한다는 건 몹시 괴롭고 고독한 일이다. 허공에 뿌린 씨앗 중에 과연 얼마나 싹을 틔우고 자랄까. 대부분은 그냥 죽는 게 아닐까. 과연 한 페이지라도 정말 읽힐 수 있을까. 책장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거나, 거저 받은 것이니 쉽게 버려지지는 않을까. 책이 아니라 나누는 게 그 무엇이라도 받는 모든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건 불가능하다. 소수의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아본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회의가 든다.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책을 전해 주는 게 아니라, 나눔 받은 책이 없어도 어차피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만 책을 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책 나눔


앞으로 1,000 권을 채우면 책 나눔을 그만두려고 한다. 끝이 있어야 더욱 소중히 여길 것 같아 끝을 정했다. 몇 년 동안 정성을 쏟던 일이 사라지고 나면, 과연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1,000개의 씨앗을 뿌렸을 때, 몇 그루의 나무가 자랄지 나는 모른다. 단 한 그루의 나무라도 무성하게 자라준다면 그걸로 할 일을 다했다고 믿는다.



*카페인 우울증 : 카카오 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른 사람의 SNS를 보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신종 질환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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