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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3. 2024

뭘 써야 할지 막막하다면, 글 재료 장보기부터

프리라이팅 또는 습작의 중요성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음에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하얀 스크린이나 종이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도대체 뭘 써야 하지? 주변에서 이것저것 글로 쓸 만한 소재나 주제를 권해주기도한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어떤 주제와 소재를 붙들고 글을 써보려고 해도 구체적으로 뭘 써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하다.


뭘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


뭘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재료 쇼핑이다. 마치 요리를 하기 전에 필요한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처럼, 글쓰기에 필요한 글 재료를 마련해야 한다. 식재료는 마트나 시장에 가서 사 오면 된다지만, 글 재료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걸까. 글 재료를 주문할 때 가장 바쁜 신체 기관은 손가락이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식재료를 주문하듯, 손가락을 사용해 필요한 글 재료를 구해야 한다.


글재료는 식재료처럼 마트나 시장에 있는 게 아니라, 모두 내 머릿속에 있다


글재료는 식재료처럼 마트나 시장에 있는 게 아니라, 모두 내 머릿속에 있다.  문제는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머릿속에 나만의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가득하다는데, 밖에서 보면 컴컴하고 텅 비어 있는 듯 보인다. 서랍이나 칸이 있어 재료들이 잘 분류되고 정리된 것도 아니어서, 무작정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있는 대로 다 꺼내서 눈으로 확인한 후, 그날의 글이 될 만한 적당한 재료들만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 재료를 끄집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는 것


글 재료를 끄집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는 것이다. 연습으로 써 보는 습작이라고 불러도 좋고 자유롭게 쓰는 프리라이팅이라고 불러도 좋다. 중요한 건 뭐든 관계없으니 계속 손가락을 움직여 일단 써 보는 것이다. 타이핑을 해도 좋고 펜이나 연필로 종이에 끼적여도 좋다. 일단 손을 움직여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제 내가 쓸 거야’라는 사실이 뇌에 전달된다. 마치 마트에서 내가 한 주문을 접수한 것처럼, 뇌가 비로소 내가 필요로 하는 재료들을 내 보내기 시작한다. 손을 바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생각도 빠르게 쏟아진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한 글 재료는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온다.


타이핑을 해도 좋고 펜이나 연필로 종이에 끼적여도 좋다


이때 주의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절대로 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첫째, 절대로 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일단 손을 멈추면 생각이 멈추고, 더 이상 글 재료는 나오지 않는다.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로 뒤로 돌아가 방금 쓴 문장을 읽어 보지 말아야 한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판단이 들어가고, 잘못 쓴 단어를 바꾸거나 틀린 문장을 고치고 싶어 진다. 조야한 문장을 보고 좌절하며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 순간 글 재료가 나오던 구멍이 막혀 버린다.  다시 시작하려면 처음 시작할 때보다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절대 멈추지 말고 계속 손을 움직여 최대한 많은 재료를 끌어내야 한다. 때로는 다음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똑같은 문장을 되풀이해서 써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도 문장 쓰기를 멈추는 대신 같은 문장이라도 반복해서 계속 쓰는 게 낫다.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고 있는 한, 글쓰기를 위한 뇌가 멈추지 않고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재료들도 꺼내 줄 것이다.


절대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절대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기대를 하면 그 기대에 맞추지 못할까 두려워 뇌가 글 재료를 내놓는 데 주저하게 된다.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어야지, 하고 기대하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거의 비어 있는 김치통을 발견하면 실망한다. 요리를 하려던 마음마저 사라질 수 있다. 냉장고 안에 연어나 캐비어처럼 김치와는 다르지만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있는 재료가 있어도 그걸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냉장고 안에서 발견한 예기치 못한 재료들을 다양하게 조합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때처럼, 우선 재료들을 먼저 살펴보자.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써나갈 때, 뇌는 그동안 숨겨 두었던 멋진 재료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슬그머니 꺼내 줄 것이다.


지금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을 하거나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해 보라


정말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뭘 써야 좋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쓰기 시작해? 여전히 의심이 든다면 지금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을 하거나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해 보라. 정말 아무거나 써도 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신기하게도 뭔가 끼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써 내려가던 중 문득 흥미로운 재료들이 눈에 띌 것이다. 갑자기 쓰고 싶은 글의 방향도 떠오를 것이다.


무궁무진한 재료에 레시피까지


공짜로 글 재료를 무궁무진하게 구할 수 있는 데다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면 되는지 레시피까지 함께 배달받을 수 있다니, 글 재료 장보기는 식재료 쇼핑보다 훨씬 쉽고 매력적이다. 뭘 써야 할지 막막하다면, 당장 손가락을 움직여 보자. 아무렇게나 쓸수록 예기치 못한 개성 있는 재료와 레시피가 나타날 것이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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