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이 많은 데다 위험을 무릅쓰기 위해 태어난 아이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오다 침입자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문을 연 아이도, 뜻밖의 방문객도 놀랐다. 침입자는 반사적으로 1층으로 뛰어내려 갔다. 아이는 살금살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거실 구석, 드럼 세트 뒤쪽으로 몸을 숨긴 침입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때 거실 반대편에서도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위협을 직감한 아이는 불을 켰다. 순간, 또 다른 침입자가 바짝 웅크린 채 몸을 움찔했다. 가족 단톡방에 SOS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아이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 힘으로 침입자들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했다.
아이의 전투 모드는 빠르게 발동했다. 후디를 뒤집어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한 시간 가까이 침입자들과 사투를 벌였다. 단톡방에 승전보를 날렸다.
“적군 섬멸 완료.”
마지막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현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침입자는 길고양이 두 마리였다.
“내 얼굴이 니나 얼굴보다 훨씬 예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데도 우리가 같이 걸어갈 때면 사람들은 니나를 보지 나를 보지 않는다. 내 얼굴은 밋밋하고 니나의 얼굴은 표정이 풍부하다.”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중
아이의 삶은 거의 매일이 영화 같다. 아이가 소설 속 니나처럼 ‘위험을 무릅쓰기 위해 태어난 인간’인 데다, 빈틈이 많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집 안에 들어온 걸까?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온 아이가 현관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짐볼을 치우지 않고 밟고 넘어가려다 발을 삐끗하는 아이, 시험날 아침이 돼서야 계산기 배터리가 나갔다는 걸 깨닫는 아이, 살얼음 위를 걷다 물에 빠지고도 다시 얼음 위로 올라가는 아이. 아이의 삶이 지루할 틈이 있을까.
그런 아이가 엄마인 내게 해준 가장 큰 칭찬은:
엄마는 항상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하자고 해서 좋아.
대학원 준비를 하다 문득 방송국 시험을 봐 아나운서가 된 것도, 금세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트레일러에 살게 된 것도, MBA를 하고 경영 컨설턴트로 지내다 결국 작가가 된 것도 돌아보면 모두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제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게 된 엄마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이의 삶을 조용히 응원한다. 그리고 가끔은 손이 근질근질하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5년 2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 출간 예정.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