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잔소리는 유효했지만, 아이는 직접 겪을 권리가 있다
현관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평소처럼 운동을 하던 중, 땀이 맺힐 즈음 휴대폰을 열었다. 거기엔 아이의 다급한 메시지가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정성 들여 챙겨둔 준비물을 방에 두고 왔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이는 받지 않았다. 1교시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아무리 서둘러도 내 걸음으론 15분은 걸릴 거리였다.
양말을 급히 신고, 워크재킷을 대충 걸친 채 준비물 가방을 들고 뛰어나왔다. 사실 아이들이 준비물을 놓고 간 적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자기 실수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아이들이 직접 해결하도록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한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이번만큼은 도와주고 싶었다. 한 번쯤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얇은 운동복 바지에 워크재킷 하나 걸친 내 모습은 추위에 부적합했지만, 빠르게 걷는 동안 땀이 맺혔다. 추운 날씨에도 반팔티에 맨투맨 하나 걸치고 나서는 아이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했던가. 막상 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춥지 않다는 아이의 말은 진심이었다. 등굣길을 따라가며 아이가 본 세상이 조금 더 선명히 이해되었다. 결국 교문에 도착해 준비물을 무사히 전달하고 돌아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아이들에게 금세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바로 해결해 준 기억이 아이들에게 남기를 바랐다. 언젠가 삶의 어려운 순간에 세상 어딘가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를. 아이의 마음 한편에 오늘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주길 바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아이는 그날 감기에 걸렸다. 아이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과 별개로, 엄마의 잔소리는 유효했다. 그럼에도 아이에게는 직접 겪어보며 배울 권리가 있다. 고난은 불가피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아이는 더 단단해지고 자신만의 진짜 지식을 쌓아갈 것이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5년 1월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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