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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너에겐 실수하고 실패할 권리가 있어

엄마 없이 등하교할 권리

by 윤소희

이사 후 처음으로 아이들의 등굣길을 따라나섰다. 산책 삼아 아이들의 뒷모습을 좇으며 보폭을 맞췄다. 길을 잘 찾아가는지 몰래 지켜보는 동안 괜스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보다 키도 크고 길도 훨씬 잘 아는 아이들의 등굣길을 감시한다는 건 어쩌면 우스운 일이다. 두 아이가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스쿨버스에 타고 내리는 것조차 배웅하거나 마중하지 않았던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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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아이들의 등굣길을 따라가 보았다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당시 듣던 성경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웠다. 어린 두 아이에게 나는 엄마 없이도 독립적으로 등하교할 권리를 주기로 했다. 현관문 여는 법을 알려주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는 당부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쌀쌀한 날씨였다.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초조히 집안을 서성이는 사이,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큰아이의 잔뜩 긴장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옷은 흠뻑 젖어 있었다. 놀라서 욕실로 데려가 더운물로 씻기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호수에 얼음이 얼어 있는 걸 보고 스케이트를 타겠다며 올라섰다가 빙판이 깨져 물에 빠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물이 깊지 않아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날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나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당장 수업을 그만두고 아이들 안전부터 살피라”라고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의 행동이 재미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 수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동행하지 않았고, 수업을 그만두지도 않았다.


큰아이는 그 후로도 두 번 더 물에 빠졌다. “왜 또 그랬니?” 묻자, 아이는 “이번에는 진짜 꽝꽝 얼었을 것 같았”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자신의 판단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 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분별력은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고 있었다. 처음 물에 빠졌을 때처럼 온몸이 젖는 일은 없었다. 빙판에 올라서기 전 신중하게 살폈고, 빙판이 깨질 때도 순간적으로 몸을 보호했다. 아이는 실수와 실패 속에서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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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는 이만할 때부터 엄마 없이 많은 일을 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물론 여전히 좌충우돌 실수하고 실패하는 아이들을 보면 잔소리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어 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WechatIMG7429.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5년 1월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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