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해주는 '집밥'을 못 먹을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법

by 윤소희
한국 가면 뭐가 제일 먹고 싶어?
집밥!


남편의 답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집밥'은 아내가 해주는 음식의 통칭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남편에게 '집밥'은 오직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일 뿐이었다. 출장 떠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남편은 '집밥'을 먹지 못하고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애들도 나중에 엄마가 해준 '집밥'이 제일 먹고 싶다고 할까?

남편이 대꾸 없이 피식 웃는다. 모른 척하고 싶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집에서 먹는 밥이 다 '집밥'일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제공하는 '집밥'에는 '맛'이란 게 빠져 있다. 엄마가 해준 가장 맛있는 요리로 '상추'를 꼽고, 집에서는 그렇게 깨작거리면서 밖에서는 뭐든 잘 먹는 두 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집밥'을 고대하던 남편도 막상 시댁에 와서는 외식을 주장했다.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해진 어머니와 음식 솜씨 없는 아내 모두를 위한 배려다. 하지만 어머니의 결정은 단호했다. 전날 늦게 도착한 탓에 새벽 5시가 되어 겨우 눈을 비비고 나가보니, "왜 더 안 자고 나왔냐?"라고 하시는 어머니는 이미 새벽 3시부터 주방에 나와 계셨다. 30분도 채 안 되어 끝날 식사 한 끼를 위해 어머니는 새벽잠을 설치고 나와 혹여 누가 깰까 조심하며 식재료를 손질하고 계셨던 것이다.


김장김치를 썰 때도 혈압 높은 아들이 혹여 짠 걸 많이 먹을까, 보통 크기보다 작게 썰어 담는다. 김치를 소복이 담은 그릇에 김칫국물을 촉촉이 부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야채는 색을 고려해 토마토와 상추, 고추, 노랗고 빨간 파프리카, 오이를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데쳐서 썰어놓은 브로콜리는 한 조각 한 조각이 어린 나무처럼 예쁘다.


불려 놓은 녹두의 껍질을 벗긴 후 녹두를 갈 때는 너무 갈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래야 빈대떡을 부쳤을 때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난다. 다진 고기를 양념해 볶고, 숙주나물과 고사리를 데쳐 미리 무쳐 두었다 먹기 직전에 기름을 자작하게 두른 팬 위에 노릇노릇하게 부쳐낸다. 동그란 녹두빈대떡 위에 붉은 실고추와 쑥갓을 꽃처럼 문양으로 올린다.


어머니가 하신 건 다 맛있어요. 제가 부치면 빈대떡이 다 부서져 버리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동그랗고 예쁘게 잘 부치세요?


어머니 곁에 서서 종종 설거지를 도우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날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내게 가지가지 요리의 비법을 전수하는 어머니는 내가 경탄하는 눈빛으로 귀 기울여 들을 때 표정이 가장 환해지신다. 이때 시간이 흘러도 전혀 발전이 없는 내 요리 솜씨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식구들이 일어났다. 모든 음식이 가장 먹기 좋은 온도와 식감으로 상에 올려져야 하기에, 어머니의 손길은 막바지가 되면 더 바빠진다. 뭇국 안에 들어갈 무는 아삭아삭 씹힐 수 있도록 먹기 전에 넣고, 고기는 정갈하게 썰어 양념해 무쳐 놓았다가 먹기 직전에 넣는다. 파릇파릇 썰어둔 파도 마지막에 넣어야 고운 색이 변하지 않는다.


갈비를 먹기 좋게 잘라 살코기가 담긴 접시를 상에 올리고 나니, 갈비뼈가 수북이 쌓여있다. 며느리인 내게도 살코기를 놓아주시고, 어머니는 뼈다귀나 생선 대가리 같은 것들을 주로 당신 접시에 올린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나는 그대로 식탁에 가 앉을 수 없었다. 뼈다귀를 식구들에게 고루 나눠주던가 버리자는 내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뼈만 수북한 접시를 내 자리로 가져갔다. 그리고 뼈에 붙은 모든 살점을 깨끗이 발라 먹기 시작했다. 살코기 대신 뼈만 핥으면서, 어쩐지 어머니 삶의 무게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갈비는 소희가 진짜 좋아하대. 어찌나 잘 먹는지 뼈가 수북이 쌓이던데. 허허.


설거지를 마친 후 거실에서 뭔가를 찾다 시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순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곧 잘됐다 싶었다. 내 본심을 알려드리는 것보다 갈비를 정말 좋아해 뼈째 뜯어먹는 며느리로 남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다른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요리사가 되어 버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의 음식을 보며 늘 경탄을 보낸다. 심지어 내가 요리를 못한다고 구박받는 것이 기쁘다. 어쩐지 내가 그들의 삶 앞에 올릴 수 있는 가장 큰 경의의 표현이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린 시절 엄마가 매운 시집살이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평생 구박을 받고 살아온 가장 큰 이유는 탐탁지 않은 결혼 조건이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할머니 앞에서 보란 듯이 자신이 배운 더 나은 방법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아무리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켜도 척척 해내는 엄마가 할머니 눈에는 얄미웠을 지도. 엄마의 뛰어난 요리 실력이 어쩌면 할머니가 살아온 그 긴 세월을 보기 좋게 밟아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않는 할머니에게 진실을 물어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오늘도 난 최대한 '맛'의 화려함을 제거하고 겸손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애를 쓴다. 평생 아내가 해주는 ‘집밥’을 먹지 못할 남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나보다 앞서 희생하며 살아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이 먼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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