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어렵게 하는 벽, TV
세상에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한쪽은 방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방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텔레비전을 끄는 사람들이지.
-영화 <맨츄리안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s)> 중
두 부류 인간 중 후자에 속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때 매일 TV 화면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을 했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도 내가 출연한 부분만 모니터 할 뿐 TV를 보지 않았다. 한 번은 방송이 없는 시간 아나운서실에 앉아 책을 읽다, 아나운서 실장에게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시간 날 때 한 편이라도 더 방송 모니터를 해야지, 쓸데없이 책을 보고 있냐고.
누군가 쓸데없다고 여기는 책 읽기가 TV 시청보다 좋았다. 책을 읽을 때는 전두엽과 후두엽 전체적으로 활동하지만, TV를 볼 때는 후두엽의 극히 일부분만 활동한다는 등 TV가 유해하다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건 아니다. 그저 재미가 없어서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영화화된 화면을 보고 실망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 TV 화면이 만들어낸 세계는 늘 어딘가 부족했다.
그저 TV에 무관심했던 내가 TV를 싫어하게 된 건 결혼하고 몇 년 후부터다. '화성 남자'들이 때때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침잠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남편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이 동굴로 들어간다는 걸 알리는 신호가 바로 리모컨으로 TV를 켜는 것이다. 어쩌면 남편은 TV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TV에서 쏟아지는 빛과 소리로 자신을 가려두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건지 모른다. 세상으로부터, 아내로부터 격리되어 그저 숨고 싶은 것인지도.
남편이 TV 앞으로 숨어드는 횟수가 늘어난 건 사업 실패 이후였다. 대책 없이 밀려드는 불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던 나날들. 당연히 숨고 싶었을 것이다. 잠시라도 숨어서 숨을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TV 화면은 절대로 친절하게 쉼과 휴식을 제공하며, 회복을 선물해 주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그 앞에 앉아 있는 우리를 억누르고 더 약하게 만든다. 무기력이 TV를 켜게 만들고, 그렇게 켜진 TV는 시선을 고정한 시청자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고.
지금도 남편이 TV를 켤 때면 둘 사이에 두꺼운 벽이 드리워진 것처럼 갑갑하고 외롭다. 소통을 어렵게 하는 벽. 그만 보라고 잔소리를 하면 아마도 더 굳게 걸어 잠글 문.
오늘도 나는 기다린다. TV라는 벽을 거두고 ‘여보!’하며 이야기를 시작할 남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