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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호흡을 헤아리는 새벽

부부관계를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

by 윤소희

그의 손이 내 몸 쪽으로 뻗어 온다. 내 몸을 끌어당기는 것으로 사인을 보낸다는 것쯤은 이제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일. 시작 버튼을 누른 듯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다음 공정은 방안을 떠다니는 먼지만큼의 상상력도 필요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피곤해서 꼼짝하기 싫은 몸을 아주 조금 움직일 수 있는 건지도.


섹스를 표현하는 말이 많이 있다. 잠자리하다, 같이 자다, 자다, 하다, 몸을 섞다, 사랑을 나누다... 그 외 온갖 저속한 표현들도 일부 알고 있다. 그중 'make love'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랑을 만든다니.


요즘은 열정적으로 사랑을 만든 후 끈끈한 몸으로 뒤엉켜 자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새벽녘 잠이 깬 그가 손을 뻗어 오는 일이 많으니, '같이 자다’라는 말보다 '같이 깨다’가 더 어울릴까. 허리가 고질병을 얻은 까닭도 있고 해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다 보니, 격렬하게 ‘몸을 섞’는 일도 없다. 그저 티 코지(tea cozy)처럼 '사랑을 덮는다'고 하면 적절할까. 티 코지는 차를 새로 끓이지는 못하지만 찻주전자를 덮어 차가 식는 걸 지연해 준다.


새벽녘 사랑이 식지 않도록 잠시 티 코지로 덮어 두고 일어나 찻물을 끓이는 사이, 창 밖으로 달빛이 눈부시게 비쳐 든다. 달이 ‘휘영청 밝다’는 말이 이런 걸까. 공기 오염으로 해조차 빛을 내지 못하는 곳에 사는 나로서는 휘영청 떠 있는 달빛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밝고 차가운 달빛 때문인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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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때문이었을까. 나는 찻주전자를 티 코지로 덮어 놓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남편 곁에 누웠다. 그의 얼굴에 얼굴을 바짝 대고 그의 호흡을 헤아려 본다. 가까이 누웠는데도 그의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내 숨을 늦추고 그의 호흡에 맞춰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그의 호흡에 내 호흡을 조율한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고. 어느새 그의 숨소리와 내 숨소리가 하나가 된다. 그의 몸속에서 덥힌 공기가 내 몸속으로 따스하게 흘러든다. 몸을 섞는 대신 숨을 섞고 호흡을 나눈다. 생명을 나눈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숨을 조율하자, 그가 더 깊숙이 내 안으로 들어와 하나가 된다.


달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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