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묻는 삶
남편은 녹두 빈대떡을 제일 좋아한다. 사실 녹두빈대떡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녹두를 밤새 불려 녹두 껍질을 까야하고, 불린 녹두를 너무 거칠지도 그렇다고 너무 묽지도 않게 갈아야 한다. 다진 고기를 양념해서 볶고, 고사리나물을 불렸다가 볶아 낸 후 잘게 썰어 주고, 신 김치도 양념을 털어내고 씻어 잘게 썬 다음 다시 양념해 무치고, 숙주나물도 살짝 데쳐 양념해 무친 후 잘게 썰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준비된 재료들을 잘 두었다 먹기 직전에 녹두 반죽에 넣어 섞은 후 기름에 노릇하게 부쳐 낸다. 그 위에 홍고추를 어슷썰기 해 고명을 얹으면 보기에도 좋은 빈대떡이 된다.
결혼 후 10여 년을 갈고닦은 끝에 녹두 빈대떡만큼은 그래도 비슷한 맛을 흉내 내고 꼴을 좀 갖추어 부쳐낼 수 있다. 아이들 입에서 “엄마가 해 준 가장 맛있는 음식은 상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리에 젬병인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맛도 맛이지만, 도무지 동그란 모양을 낼 수가 없었다. 프라이팬에 반죽을 올리는 족족 모양이 망가져 빈대떡 대신 녹두 스크램블이 되곤 했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멥쌀을 조금 섞어 보라고 알려준 덕분에 제법 동그란 모양을 갖춘 빈대떡을 부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왜 하필 이렇게 복잡한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남편에게 묻지 않았다. 그를 위해 빈대떡을 부치던 시간이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국수 요리라면 사족을 못 써서 파스타, 냉명, 칼국수, 니우 로우 미엔(牛肉面), 메밀소바 등 국수만 해주면 잘 먹는다. 작은 아이는 유부 초밥을 좋아한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김밥을 쌀 줄 모르는 (김밥만 싸려고 하면 옆구리가 터져 버린다) 내가 소풍 때마다 시판 유부초밥 재료로 도시락을 준비해도 괜찮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열거하다 보니 문득 '나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아무 거나 다 잘 먹잖아.”
식구들은 이렇게 답했다. 물론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뭐든지 잘 먹는 편이다. 누군가가 ‘어머, 그런 걸 어떻게 먹어?’ 하는 개고기나 닭발, 닭똥집, 곱창 같은 것도 잘 먹는다. 외국 여행을 다녀도 음식 때문에 고생은커녕 오히려 살짝 살이 붙어 돌아 올만큼 새로운 음식을 잘 소화한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대답조차 할 수 없다니.
40년이 넘게 살아 놓고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 누구도 물어봐 주지 않는다고, 스스로도 묻기를 멈춘 탓이다. 질문은 멈추면 안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내게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겠다.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지, 하루 중 언제 가장 행복한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어떤 꿈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