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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출 때 춤만 추고, 잠을 잘 때 잠만 자라

100일 챌린지_Day 84

by 윤소희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 각자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익숙한 저녁 식탁 풍경. 뜨거운 국에서 김이 오르고,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만,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진짜로 있지는 않다. 서로의 눈 대신 액정 화면을 보며, 대화 대신 알림 창을 확인한다. 밥은 입에 들어가지만, 방금 뭘 먹었는지, 무슨 맛과 냄새가 났는지, 입안에서 온도나 질감이 어땠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앞에 앉은 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문자에 답장을 쓰고, 머릿속에서 내일의 일정표를 조율한다. 심지어 새벽에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조차, 첫 문장을 쓰기도 전에 오늘 아침 주문해야 할 식재료 목록을 검색한다. 그러다 보면 훌쩍 시간이 흐르고, 모니터에는 문장 대신 여러 개의 브라우저 탭만 열려 있다. 무슨 일을 해도 하나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니, 수없이 많은 일을 하고도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은 기분이다. 손끝은 분주하지만, 마음은 허공에 흩어진다.


춤을 출 때 춤만 추고, 잠을 잘 때 잠만 잔다.


얼마 전 몽테뉴를 읽다 끝을 접어놓은 페이지의 문장을 열어 본다. 몽테뉴는 심지어 과수원을 홀로 거닐다가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면 곧 생각을 바로잡아 다시 과수원의 산책으로, 그 고독의 감미로움으로 자신을 돌려놓는다고 했다. 단순히 집중하라는 조언을 너머, 하나의 행위 속에 존재 전체가 깨어 있으라는 요청이었다.


IMG_5692.HEIC 몽테뉴 <수상록>


언제부터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된 걸까. 처음 글을 쓰던 날들을 떠올려본다. 그때 나는 시간의 감각을 잃을 만큼 몰입했다. 날이 훤히 밝았는지도 모르고, 내 마음을 따라 문장을 쓰던 시절. 한 문장이 완성되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삭제된 문장조차 나의 일부처럼 아련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를 잊었지만, 정작 그 잊음 속에 오히려 가장 나답게 존재했다.


요즘은 글만 오롯이 쓰는 나를 보기 어렵다.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음 일을 걱정하고, 지금을 살면서 내일을 계산한다. 몸은 이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늘 미래나 과거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결국, 아무 데에도 존재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식탁에 휴대폰을 엎어 두었다. 버섯과 들깨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지나 온몸으로 퍼진다. 따스한 국물의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밥알이 서로 엉기며 입 안에서 흩어지는 감각이나 염분이 혀끝에 닿는 순간의 감각.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깨어나자, 놀랍게도 이 사소한 행위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집중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다.


춤을 출 때 춤만 추고 잠을 잘 때 잠만 자는 것, 세상을 향한 가장 정직한 응시다. 나 자신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길이다. 온전히 '지금 여기'에 몰입해, 행위와 존재가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을 만끽한다. 오늘 나는 그 춤을 다시 배우려 한다. 밥을 먹든, 숨을 쉬든, 살아 있음 그 자체로 춤추는 법을.



Weixin Image_2025-10-02_165427_650.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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