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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왜 냄새를 수집하는가 - 냄새의 심리학

100일 챌린지_Day 83

by 윤소희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은 사람도 마들렌 장면은 잘 안다. 침울한 하루 속, 홍차에 적신 과자 한 조각이 입천장에 닿는 찰나 - 그는 자신 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름을 느낀다. 그 기쁨은 맛의 기억을 넘어, 존재의 깊은 본질로 그를 데려간다.

내가 찾는 진실은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기억은 논리가 아니라 냄새의 길을 따라 되돌아온다. 우리는 종종 말보다 냄새로 먼저 어떤 시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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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현상: 특정한 냄새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강하게 되살리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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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에는 중립이 없다. 어떤 향을 맡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따뜻함, 불안, 위로, 혹은 오래된 두려움. 냄새는 정서의 문을 여는 비밀 열쇠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 종종 그의 향기를 남겨 둔다. 그것은 단순한 체취가 아니라 ‘그가 있다’는 감각이다. 냄새는 부재의 자리를 채우고, 시간의 공백을 메운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오래 남는 흔적. 그것이 냄새의 힘이다.


사람이나 공간의 호오(好惡)도 냄새로 구분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안심할 수 있는 향기가 나고, 불편한 공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떠 있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냄새로 타인을 판단한다. 눈이나 귀보다, 코가 먼저 진실을 감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유를 모른 채 누군가에게 끌리거나 멀어진다. 냄새는 본능의 언어다.


이토록 중요한 감각을 글 속에 많이 담아두고 싶지만, 냄새를 묘사하려 하면 언어는 갑자기 멈춘다. ‘꽃향기’ '딸기 냄새' ‘물 비린내’처럼 다른 대상을 빌려 표현하는 법 외에, 다른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냄새는 말보다 미묘하고, 말보다 오래 남는다. 언어는 냄새 앞에서 주저앉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경계에서 문장을 찾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2.png 언어는 늘 늦게 도착하지만, 냄새는 언제나 먼저 온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종종 ‘냄새 사냥’을 제안하곤 했다. 하루 동안 맡은 냄새를 기록하는 과제다. 처음엔 다들 머뭇거리지만, 곧 지하철의 쇠 냄새, 젖은 먼지의 냄새, 프라이팬에서 조려지는 달큼한 북어 냄새를 발견한다. 그 순간, 감각의 근육이 깨어난다. 후각을 훈련한다는 건 곧 언어의 감각을 훈련하는 일이다. 냄새를 세밀히 인식할수록 문장은 더 명료해진다. 언어의 숨결이 되살아난다.


글을 쓴다는 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다. 그중에서도 냄새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감각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진실을 품고 있다. 사랑은 냄새로 기억되고, 슬픔은 어떤 냄새를 남긴다. 언어는 늘 늦게 도착하지만, 냄새는 언제나 먼저 온다. 나는 오늘도 단어보다 냄새를 먼저 찾는다. 그 잔향 속에서, 다시 한 문장이 피어날 걸 믿으며.



IMG_7331.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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