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81
아무 말하지 않으면, 괜찮은 줄 안다. 사람도 나무도 그렇다. 겉으론 멀쩡한데, 안에는 오래된 통증이 여전히 살아 있다. 그 통증이 표면으로 밀려올 때, 나무는 옹이를 만든다. 인간은 글을 쓴다.
며칠 전, 카메라도 없이 사진 동아리를 따라 출사에 나섰다.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 몸에 새겨진 둥근 자국 하나—한때 가지였던 것이 잘려나가고, 세월에 따라 상처가 굳으며 남긴 흔적. 그 결 안에는 한 생이 지나간 세월과, 통증이 응고된 시간의 두께가 고요히 새겨져 있었다. 바람과 비, 햇빛이 그 자리를 오가며 어루만졌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흉한 무늬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것은 소리 없는 절규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옹이를 응시했다. 살이 조여들며 단단히 굳은 결, 그 안에 남은 미세한 균열. 마치 “괜찮다”는 말을 너무 자주 반복해 생긴 인간의 미소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보인다는 건 언제나 불안한 일이다. 사람들은 침묵하는 이를 강하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침묵은, 때로 너무 깊이 아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생명은 없다. 단지 어떤 존재들은 느리게 울고, 언어 대신 몸으로 기록할 뿐. 옹이는, 나무의 울음이다.
글을 쓴다는 건, 그 울음을 문장으로 번역하는 일이다. 말하지 못한 일들, 부서진 날들의 파편, 스스로도 모른 채 눌러 둔 마음들이 문장 속에서 하나둘 터져 나온다. 나는 종종 글을 쓴 뒤 멍해진다. 울지 않았는데, 울고 난 사람처럼. 눈물이 아니라 단어로 흐느끼고, 그렇게 흐느낀 후 조금씩 회복된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굳어가며 문양을 남긴다. 상처에서 나온 언어는 그 자리를 품위 있게 감싼다, 나무의 옹이처럼.
나는 옹이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건 상처가 남긴 흉터지만, 동시에 생존과 회복의 서사다. 고통은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견디며 조각해 가야 할 존재의 방식이다. 응시하고, 사유하고, 문장을 새기며, 잘려나간 가지에 새 살을 돋운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옹이를 만들어 간다.
나는 화려한 문장을 쓸 줄 모른다. 다만 나무처럼, 묵묵히 견디는 문장을 쓸 뿐이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통증이 어느 날 품위 있는 언어로 응결될 때, 나는 옹이를 품은 나무처럼 단단히 늙어가리라. 상처가 문장이 되고, 고통이 품위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침묵 속에 글을 쓴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