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쾌락과 기쁨 사이

취하라_보들레르

by 윤소희

취하라


-보들레르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술로, 시로, 사랑으로, 구름으로, 덕으로,

네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든 좋다.

다만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만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이미 취기가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줄 것이다.


취하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항상 취해 있으라.

술이건, 시이건, 미덕이건 당신 뜻대로



보들레르.png 쿠르베 - <보들레르 초상>

“그리고 나 자신을 총으로 쏘고 싶었다”는 키르케고르 일기의 한 구절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지독한 환멸로

살아 있음의 보잘것없음에

처절한 무력감에

술에 취하지 않고는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아직 젊었던 그때,

이 시를 읽었더라면

아니 꼭 이 시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시라도 읽을 수 있었더라면


꼭 술이 아니더라도 취할 수 있음을 알았을 텐데

그 어느 누구도 곁에 없더라도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았을 텐데


快樂은 아무리 들이부어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구멍만 커지지만

창조와 예술을 통해 물들여지듯 천천히 차오르는 기쁨은 빈틈없이 가득 채우다 결국 밖으로 넘쳐흘러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