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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신,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100일 챌린지_Day 86

by 윤소희


의사의 바늘이 어깨를 향하던 순간,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아프면 제 손을 꼭 쥐세요.

그 짧은 접촉이 통증보다 먼저 내 심장을 흔들었다.


병원에서 보통 인형을 준다. 아픈 이들이 통증을 참기 위해 꽉 쥘 수 있도록. 하지만 그날 내 손에 쥐어준 건 인형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었다. 그 따뜻한 현실이 낯설었다.


1.png 병원에서 보통 인형을 준다. 아픈 이들이 통증을 참기 위해 꽉 쥘 수 있도록


바늘이 살을 찌르고 염증 부위를 건드릴 때, 나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꽉 쥐지 못했다. 너무 세게 쥐면 그녀가 아플 것 같았다. 나는 손을 쥐며 동시에 힘을 뺐다. 쥐며 놓고, 견디며 미안했다. 그 짧은 순간, 인간다움이란 얼마나 섬세한 감각 위에 서 있는가를 느꼈다. 통증을 잊고 싶은 마음과, 타인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하는 그 미묘한 균형.


그녀의 손이 전해주는 온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문장을 쥐어짜듯 쓸 때가 있다. 문장도 너무 세게 쥐면 부서지고, 너무 느슨하면 진심이 새어 나간다. 통증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견디며, 문장은 결국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민다. 위로받고 싶은 욕망과,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 — 그 사이의 긴장 속에서 문장이 태어난다.


몸이 아플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통증은 세계와의 연결을 끊고, 모든 감각을 자기 내부로 감춘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이 닿는 순간, 그 닫힌 문이 천천히 열린다. 고통이 닫은 세계를, 문장이 다시 열어젖힌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고통의 중심에서 시작해 다시 누군가의 세계로 가닿는 일이다.


인형은 대체물이었지만, 그녀의 손은 실존이었다. 좋은 문장도 그렇다. 기술이 아니라 체온에서, 삶의 온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손끝으로 세상을 다시 배운다.


세상도 나도 여전히 아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손끝에 남은 그 온도를 기억하며, 누군가의 고통을 조심스레 어루만질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위해. 서로의 손을, 끝내 놓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WechatIMG9772.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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