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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어 줘 - 글쓰기는 상처를 번역하는 일

100일 챌린지_Day 97

by 윤소희

구병모의 신작 『절창』을 펼쳤을 때, 나는 오래전 써두고 서랍 속에 처박아둔 소설 제목을 떠올렸다.

'나를 읽어 줘'

그 짧은 제목에는 한 인간이 자기 서사를 온전히 읽히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숨어 있다. 『절창』의 ‘아가씨’가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읽어내는 설정을 봤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야말로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니까. 내 소설 속 인물들도 서로의 상처를 알아채며, 비로소 서로를 읽기 시작했다.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상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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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신작 『절창』을 펼쳤을 때, 나는 오래전 써두고 서랍 속에 처박아둔 소설 제목을 떠올렸다. '나를 읽어 줘'


두 아이의 얼굴엔 각각 흉터가 하나씩 있다. 큰아이는 장난감 위로 넘어지며 얼굴에 꽃 모양의 자국을 남겼고, 작은아이는 프랑스 여행 중 침대에서 떨어지며 협탁 모서리에 눈썹을 찢겼다. 나는 그 상처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저릿했다. 언젠가 크면 성형을 하자고 말했을 때, 아이들은 똑같이 대답했다.

“그냥 둘래요. 이게 있어서 나다운 건데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상처는 흠이 아니라 정체성의 흔적이라는 것을.

흉터가 지워지면, 나는 내 삶의 한 문단을 잃게 된다.


내 몸에도 여러 개의 흉터가 있다. 보이는 흉터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마다 서사가 있다. 나는 그 서사들을 더듬으며 글을 쓴다. 글쓰기란 결국 상처를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그 번역은 쉽지 않다. 원문은 언제나 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상처를 꺼내어 빛에 비춘다. 그래야 그것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잊힌 기억의 틈새에서 단어를 꺼내고, 그 단어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는다. 소설 속 ‘아가씨’가 베인 상처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듯, 나도 내 상처를 헤집으며 그 깊이를 잰다. 아직 낫지 않은 고통의 온도를 측정하고, 그 온도로 문장을 세운다. 그렇게 번역된 문장은 나를 구한다.『절창』 속 ‘보스’가 ‘아가씨’에게 제발 자신을 읽어달라 애원했던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읽히지 못하면, 인간은 끝내 자기 안에 갇혀버린다.


글을 쓴다는 건 베인 상처에 손가락을 넣는 일이다. 읽고 싶은 마음과 읽기 싫은 마음, 드러내고 싶은 마음과 숨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나는 매일 흔들린다. 그 진동이 문장을 낳는다. 오늘도 나는 내 오래된 상처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거기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를 번역한다. 그 언어가 속삭인다.


나를 읽어 줘.




WechatIMG7581.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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