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어릴 적 읽었던 ‘감장 고양이’라는 동화를 잊지 못한다.
재수 없다고 욕을 먹고 돌팔매질을 당해도 자신의 아름다운 까만 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감장 고양이. 쓰레기통을 뒤질지언정 한 번도 남의 집 음식을 훔쳐 먹은 적 없는데 도둑고양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을 맞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이브, 배가 몹시 고픈 감장 고양이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갔고, 창문 너머 커다란 식탁에는 맛있는 파티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보는 사람은 없고, 창문은 열려 있고. 딱 한 번만 훔쳐 먹을까? 어차피 도둑고양이라고 불리는데. 하지만 감장 고양이는 끝내 자신의 아름다운 까만 털에 도둑질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창문 밑에 엎드려 죽어갔다.
나 역시 감장 고양이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팔매질을 당해도
나만의 까만 털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때가 있다.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그 까만 털을.
까만 털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를 진정한 나이게 했던 그 까만 털은 이제 적당히 물들어져 있다.
누구나의 마음을 편하게 할 밝은 갈색쯤으로.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저 멀리 서 있다.
감장 고양이 한 마리.
까만 털을 고르게 빗고 다리를 쭉 펴고
우아하고 그리고 당당하게.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인가?
다시 푸른색으로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