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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에 칼을 긋는 아이

예민한 이들이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

by 윤소희

난지도와 주변 지역에 조성된 생태공원을 다녀왔다. 바로 이 곳이 쓰레기 산이었다고 아이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보지만, 아름답고 깨끗하게 조성된 공원을 걸으며 그 사실을 실감하긴 어려웠다. 따스한 봄빛 아래 흩날리는 꽃잎들. 그 밑을 파고 들어가면 오래전부터 쌓아둔 쓰레기 더미가 나온다고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 말을 믿기에는 봄꽃들의 얼굴이 지나치게 눈부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공원을 천천히 걷고 있는데, 막내 아이가 힘들어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남편은 걷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채 안되었으니 좀 더 걸어야 한다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중간에서 망설이고 있다. 남편은 저만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고, 아이는 획 돌아서더니 혼자 돌아간다. 길눈이 밝은 아이니 혼자서라도 차를 세워둔 곳으로 잘 찾아가겠지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결국 남편을 남겨둔 채 아이 뒤를 쫓아갔다.


한참 아이를 찾지 못해 걱정했는데 아이 모습이 보인다. 한동안 계단 난간에 서 있던 아이가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인지 다시 걷기 시작한다. 서둘러 걷지만 아이와의 거리 차가 잘 줄지 않았다.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아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을 것이다. 자신을 위험에 던짐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 익숙하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엄마의 분노 표현 방식이었고, 나 역시 종종 보이던 방식.


신혼 초 친정 엄마와 동생들이 상하이에 있는 신혼집에 놀러 와 며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한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 나와 동생들은 엄마가 집을 나갔어도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할 만큼 멀리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엄마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피하고 화가 났지만, 밤중에 타국의 아파트 단지를 빙글빙글 돌며 엄마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그때 엄마에게 화가 난 것보다 남편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런 감상적인 행동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싸우다 화가 나면 몸 어딘가가 아픈 것, 집을 나가거나 헤어지자거나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 등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소모적 반응들. 휙 돌아서 가버리는 아이를 보고도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아이가 멀리 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냥 놔두자는 것이다. 그 말은 분명 맞지만, 남편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어차피 자신을 좀 봐달라는 ‘쇼’에 불과할 지라도, 그런 ‘쇼’를 할 때 아이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아이는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된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같은 비합리적인 사고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대부분은 ‘쇼’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상처가 자꾸 쌓이면 정말 자신을 해하는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열심히 달려 마침내 붙잡은 아이를 그냥 꼭 안았다. 싫다고 버둥거리는 아이를 놓아주지 않고 더욱 꼭 안았다. 진짜 싫어서 버둥거리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을 따라와 준 엄마를 보고 안도했을 테지만, 좀 더 빨리 따라와 주지 않은 것만큼 가슴에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상처 입고 버둥거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다. 상처를 보듬지 않고 그냥 쌓아두기만 하면, 심지어 대물림해서까지 쌓아둔다면 예전의 난지도처럼 쓰레기 산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위에 심어도 상처는 꽃에 핏물을 들이며 드러나겠지. 스스로 베지 않아도 살면서 수도 없이 상처를 받게 될 텐데, 제 몸에 칼을 그어대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를 더욱 꼭 끌어안는다. 하나의 상처라도 그냥 덮지 말고 낫게 해주고 싶어 상처를 향해 호호 입김을 불면서. 마침 불어온 봄바람에 코끝이 시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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