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 식 정치성향 테스트
총선이 다가오니 정치적 성향 테스트 도구가 SNS 상에 돌고 있는 모양이다. 재미 삼아 테스트를 했고, 거의 예상대로 점수가 나왔다. 내 좌우 성향 점수를 공개한다면 지인들 중 일부는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 이상을 삶에서 잘 드러내지 않았기 (또는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양쪽의 성향이 내 안에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일까?
몇 년 전 미셸 투르니에의 책에서 '샤워는 좌파 쪽에 위치해 있으며, 목욕은 우파 쪽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정치 성향 테스트를 해보지 않아도 내가 좌우 어디쯤 존재하는지 바로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보통 샤워를 한다. 어차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하는 일, 샤워 쪽이 훨씬 빠르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두 아이 출산 후에도 바로 샤워를 해서 많은 한국 여인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두 아이 모두 중국 병원에서 출산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바쁜 일상에서는 욕조에 목욕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욕조 자체가 없는 화장실도 물론 있고.
그럼에도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커다란 욕조에 목욕물을 그득 받고 그 안에 들어가 가만히 있고 싶다. 뽀얀 뭉게구름처럼 거품이 이는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은은한 아로마 향기를 맡으며 물과 함께 출렁이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양수 속에 떠 있는 태아처럼 출렁이는 고요한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 감고 평온하게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비눗물의 감촉을 느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만히 흘려보내고 싶다.
그런가 하면 시간과 여유가 있더라도 샤워를 더 사랑하는 순간이 있다. 5킬로나 10킬로쯤 달리고 난 뒤, 땀에 젖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샤워실로 들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찬물을 맞을 때의 쾌감. 그 짜릿한 쾌감은 따끈한 욕조 물속에서 느낄 때의 보드라운 평온과는 또 다른 쾌감이다. 말라붙어 있던 내 몸이 간질간질해지며 갑자기 새싹이 막 돋아나려는 듯 꿈틀거리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샤워는 매일 할 수 있지만, 그토록 짜릿한 샤워는 몸을 움직여 30분 이상 달렸을 때만 가능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머리로는 이상적 좌파를 추구하면서, 몸은 우파의 지극히 편안한 맛을 잘 알고 있지만, 대체로는 적당한 좌파로 살고 있는 인간인 모양이다. 어쩐지 '미셸 투르니에’식 측정법이 정치성향 테스트보다 정확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