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내게도 일찌기 ‘마른 빵에 핀 곰팡이 /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같던, 고통과 자학의 시간이 있었다.
아무런 존재의 이유도 의미도 없어, 그저 하루하루를 자학하며 보냈던 시간.
그런 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주며, 고통과 자학의 어둠에서 끌어내 빛으로 인도해 준 이가 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 새 삶을 살게 되었고, 더 이상 ‘마른 빵에 핀 곰팡이’라 스스로를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토록 고마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
겨우 ‘잠시 스쳐갈 때’ ‘나를 안다’고 말하는 속삭임 때문에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나는너를모른다.'
이 시를 읽다 그 일이 떠올라 많이 울었다.
아주 잠시라도 ‘빛’을 떠나 다시 ‘어둠’으로 발을 집어넣었던 내가 혐오스러워 가슴을 찢으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어둠으로.
다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