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손은 불에 넣지 않으면서 뜨거운 불길을 유지하려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by 윤소희

열 여섯 살, 내 나이의 꼭 두 배가 되는 선생님을 사랑한 적이 있다. 그 나이 소녀들에게 흔하디 흔한 그런 사랑.

하루도 빼놓지 않고 4~6장 분량의 편지를 썼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가 그 편지들을 배달했다.

1년쯤 되었을까. 모든 짝사랑하던 이들이 바라고 바라는 일이 드디어 일어났다. 사랑에 대한 반응과 고백.


그 때 난 페르미나 다사처럼,

사랑의 감동이 아닌 환멸의 심연을 느꼈다.

선생님의 귀여운 어린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페르미나 다사처럼, ‘그 편지들은 심심풀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손은 불에 넣지 않으면서 뜨거운 불길을 유지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모른다.


상대를 정말 사랑했다기 보다는,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글과 문장으로 토해내는 것 자체를 사랑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이를 먹고서도, 그런 '연애편지 사건’이 두 번쯤 더 있었다.

안타까운 건 종이에 썼던,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공간에 썼든, 한 글자도 남김 없이 파기되었다는 것.

그토록 열정을 다 해 쏟아냈던 문장들이.


플로렌티노 아리사.

주인공임에도 이토록 감정이입이나 공감이 되지 않는,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은 인물도 드물 듯 하다.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인내하고 기다리며 공들여 준비한 그와

결국 형편없이 망가지고 늙어버린 몸을 섞고 마지막 순간 함께 있다 해도

페르미나 다사의 마음 속에 단 하나, ‘사랑’만은 없었을 거라 여겨지는 건 나 뿐일까.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독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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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책(좌) / 영화 포스터 (우)


사실 그녀에게 있어 그 편지들은 심심풀이용으로, 자기 손은 불에 넣지 않으면서 뜨거운 불길을 유지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반면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한 줄 한 줄마다 자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와는 달리 사랑의 감동이 아닌 환멸의 심연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런 망상을 키워왔는지 모르겠다고 놀란 마음으로 자문했다. … “오늘 당신을 보자 우리의 사랑은 꿈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공적인 생활의 과제는 두려움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부부 생활의 과제는 지겨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싸구려 호텔보다 더 많은 방이 있어.”
그는 그녀의 몸도 그를 원하고 있는지 알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조급하고 슬픈 사랑이었다. 그녀는 ‘이제 우리는 완전히 끝났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두 사람 다 실망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그녀는 아니스 술 때문에 미친 짓을 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날 이후 한순간도 헤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