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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20. 2020

용서하지 못하는 오직 한 사람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플로렌스 포크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상실인데,  

고작 곁에 있어줄 누군가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도록 키워지는 모든 여성들이 한 번쯤 읽고 생각해 봐야 할 책,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늘 미움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를 미워한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걸 모른 채 나를 보호하겠다고 혼자 숨어들고,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거짓 자아’, 곧 가면을 쓰고 다녔으니. 아찔하다. 


용서하지 못하는 오직 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혼자 있는 여성이든, 남편이나 애인이 있는 여성이든, 아니면 남성이든,  

우리 모두는 혼자 있는 시간,  

고독이 필요하다. 

‘어떤 남자의 눈이나 손길도, 어떤 천사의 눈이나 손길도 꿰뚫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배우자나 애인의 상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나큰 상실이니까. 


고통보다 큰 힘을 지닌 것은 단 한 가지, 깊은 내면의 탐구뿐이다.


외로움이나 고립, 소외나 실패가 아닌 온전한 고독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설사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해도 남의 시선으로 손상되지 않은 ‘나’를 찾고 싶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플로렌스 포크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내적 존재는 어떤 남자의 눈이나 손길도, 어떤 천사의 눈이나 손길도 꿰뚫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스탠턴) 


여성은 강하면서 섬세한 존재다. …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아주 다양하다. 가냘프고 공허하고 허기지고 황폐하다. 그러나 내면은 모두 신성한 빛으로 빛난다. … 변화의 필요성을 느낌에 따라, 그리고 상처 입고 무시당한 정도에 따라,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 ‘자기’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상력. … 이 능력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험을 놀라워하는 감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로 커간다는 것은 풍요로움과 즉흥성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두려움과 자의식은 우리를 보호색 뒤에 숨게 만든다. 


기쁨을 잃게 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두 가지 영향, 즉여자로 사회화되어가는 과정과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상처 때문에, 결국 우리의 자기는 숨어버리게 된다. … 더 극단적인 경우, 상실과 상처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거짓 자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창조적인 고독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혼자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어린아이 같은 엄마’는 딸에게서 돌봄을 받으려고 하고, ‘친구 같은 엄마’는 친구이자 엄마가 되기보다는 딸의 또래가 되려고 한다. ‘희생적인 삶을 산 엄마’는 자신의 희생을 늘 거론함으로써 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시기심 많은 엄마’는 딸을 낮추고 딸이 성취한 것을 무시하려고 하며, ‘질투하는 엄마’는 딸의 성적 특징을 공격한다. ‘수동적인 엄마’는 딸의 감정적 욕구를 모른 체하고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도 외면하며, ‘돌봄을 받지 못한 엄마’는 딸을 이용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는 데에 급급하므로 딸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딸의 감정적 욕구를 묵살하게 된다. …어떤 형태를 띠든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딸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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