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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22. 2020

임계장의 성은 '임'이 아닐 수 있다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제목만 보고 저자의 성이 ‘임’이라고 생각했다, 주문한 책을 받아 보고 ‘조’여서 깜짝 놀랐다. 서문을 읽고 나서야 ‘임계장’의 뜻을 알고, 몹시 미안해졌다. 경비원이 쓴 책이라는 정도만 듣고 저자에 관해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은 채 책을 휙 장바구니에 넣었던 것이 저자를 ‘임계장’이라고 불러버린 것과 뭐가 다를까. 수많은 임시 계약직 고령 노동자들을 성도 이름도 관심 없다며 ‘임계장’이라고 불러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던 내 태도가 부끄럽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충격을 받았다. 그분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할 거라 짐작은 했지만, 실제 상황이 내 상상을 초월해서 놀랐고, '소수의 가난한 약자들’의 일이라 여겼던 일이 생각보다 다수의 평범한 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놀랐다.  


물론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김갑두(‘갑질의 두목’)는 아니다. 주민들은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그리고 극소수의 나쁜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수많은 ‘임계장’들이 자신의 성과 이름을 되찾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답답하지만. ‘무관심한 다수’에서 ‘좋은 사람 소수’가 되기 위한 노력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좋은 사람 소수’로 묘사한 이들은 그저 저자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경비실에 음료수 정도를 슬쩍 놓고 가는 이들이었다.  


무지하고 무딘 채 살아왔던 나를 글로 깨닫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극한의 작업 환경 속에서도 틈틈이 글을 쓴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3년 여의  ‘임계장’ 생활 중 저자가 적은 노동일지가 10권이 넘었고, 저자를 방문했던 후배가 이를 발견한 게 계기가 되어 책이 나왔다고 한다.  


역시 글쓰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다.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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