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마음

‘사이’를 존중받지 못하는 고독 결핍의 시간에

by 윤소희

혼자 지내기에 맞춤한 작은 공간에 네 식구가 북적거리며 지내고 있다. 작은 공간은 밤이 되면 침대 위와 방바닥으로 나뉘어 두 개의 침실이 되었다가, 낮이 되면 책상과 앉은뱅이책상, 아일랜드 식탁으로 나뉘어 각자의 방이자, 학교, 작업실이 된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 식탁 옆에 바로 붙어 서서 음식을 만들 때는 아이의 노트북 화면에 내가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안 그래도 작은 주방을 쪼개어 학교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루는 큰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손바닥만 한 공간에 숨을 곳이 어디 있다고 아이를 잃어버리는지. 아이가 보이지 않자 다급한 마음에 아이 이름을 계속 불렀다. 처음에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그러다 점점 새된 목소리로.


마침내 옷장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는 기다란 몸을 이불처럼 접어서 좁은 옷장 안에 잘도 밀어 넣었다. 왜 그랬느냐고 묻지 않았다. 내 눈썹 높이까지 훌쩍 자라고 입술 주위가 거뭇거뭇해져 곧 수염이 나려는 다 큰 아이가 옷장 안으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감옥에 갇힌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건 맘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어쩌면 고독일 지 모른다. 잠깐도 온전히 혼자가 되지 못해 나와 너의 ‘사이’를 존중받지 못하는 시간. 그리운 이들을 만날 수 없어 외로운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온전히 고독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우리는 고독이 부족해 시들어 간다. 마치 다닥다닥 붙어 자라느라 햇빛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나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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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집어먹던 버섯을 삼킨 것도 아닌데, 갑자기 우리가 머무는 세계가 훌쩍 커지고 또 작아지며 왜곡되고 있다. 우리의 몸이 작게 줄어든 듯 가족 외의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는 우주의 별들 사이만큼 멀어졌다. 우리 몸이 커져버린 듯 함께 지내는 네 식구 간의 물리적 거리는 좁아도 너무 좁다. 양손에 서로 다른 버섯을 들고 야금야금 번갈아 깨물며 몸 크기를 그때그때 맞게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밀려왔다 또 쓸려가는 바닷가의 파도처럼 나와 너의 ‘사이’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출렁이면서.


“내가 먼저 옷장에 들어갈게.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밖에서 시간 재 줘.”

앨리스의 버섯은 손에 없지만, 아이들은 그들만의 놀이로 출렁이기 시작한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있고 싶어 옷장에까지 기어들어가지만, 그렇다고 옷장에 혼자 영원히 남겨지길 바라는 건 아니니까. 아이들은 서로의 ‘사이’를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며 깔깔대기 시작한다. 찰싹거리며 밀려들어왔다 잡으려 하면 도망가버리는 파도처럼 기분 좋게 출렁이면서.


놀이가 끝나고 아이들이 빠져나온 옷장 문을 다시 가만히 열어 본다. 얼마나 몸을 구기면 저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옷장 안에는 이미 작은 공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내가 들어가 앉아 있다. 웅크린 나는 점점 더 작고 단단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옷장 문을 슬그머니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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