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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27. 2020

폐철길을 따라

아련한 기억의 울림을 가만히 느끼며 걷다

폐철길을 따라 만든 걸었다. 식구들을 데리고 앞장서서 걷는 남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힘들어 쉬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재촉하는 남편은 몹시 들떠 있었다. 

“바로 저기야, 저기.” 

갑자기 폐철길을 벗어나더니 남편은 굴다리 옆으로 난 좁은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골목길에서 가방을 뺏겼는데…” 

아이들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언덕길을 따라 오른다.  

“저 간판은 어렸을 때 있던 그대로네.” 

숲길 바로 옆 그 동네는 남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다. 남편이 태어나서 20여 년 넘게 살았던 집은 이미 헐렸지만, 그 자리에 세워진 작은 빌딩이 그 주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남편은 그곳에서 줄곧 꿈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꺼내 보여줄 만한 추억이 없다. 어떤 이유에선지 꽤 많은 기억을 잃었다. 특히 서른 살 이전의 기억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동창들을 만나 학창 시절 추억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속에 등장하는 내가 늘 낯설었다. 가끔 부모님이나 동생들을 만나 옛이야기를 들을 때 역시 나는 머릿속에서 하얀 백지 위를 뒹구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맞아 그렇지' 하고 맞장구 쳐주거나 '그건 아니지' 하며 그들의 기억을 수정해 주고 싶어도 내 기억 창고 속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없다. 골다공증에 걸린 뼈처럼 내 기억창고의 뼈대들도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억들은 움켜쥐려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빠르게 사라진다. 


가끔 치매 환자와 마주치면 지인이 아니라도 아련한 슬픔을 느끼곤 하는데, 아마 묘한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완전한 기억 말고는 ‘나’를 지탱할 다른 것을 찾을 수 없다는. 


폐철길을 따라 다시 천천히 걷는다. 남편이 계속해서 쏟아내는 옛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유 없이 가슴이 조이듯 아팠다가 갑자기 설레기도 했다. 남은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근처를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감각적인 이미지는 남김없이 사라졌다 해도 기억은 내 안에 그대로 있다고. 기억 창고 어느 방에 두었는지 잊었기에 이야기로 끄집어낼 수는 없지만, 기억은 내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이유 없이 마음이 울릴 수는 없을 테니까. 


폐철길을 따라 걷는다. 누군가는 또렷이 떠오르는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며 걷고, 누군가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걷는다. 나는 그저 아련한 기억의 울림을 가만히 느끼며 걷는다. 먼 훗날 폐철길을 따라 걷는 이 장면도 결국 이미지 없는 울림으로만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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