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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28. 2020

방향 없이 휩쓸려가며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시간의 향기>_한병철

한 달 동안 전라도 여행을 하면서 ‘슬로시티’를 몇 개 돌아볼 수 있었다. 

담양의 창평 삼지내 마을, 증도, 그리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청산도. 

셋 다 물론 다른 느낌이었지만, 셋 모두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야 좋은 곳이었고 나도 모르게 시간에 대해 생각애 보게 되었다. 느리게 걷는 것이 참 좋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남아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슬로시티_증도 (좌), 창평 삼지내 마을 (중), 청산도 (우)


많은 이들이 가속화가 위기의 원인인 양 말하고 있지만, 저자는 오늘날 닥친 시간의 위기를 가속화로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속화라고 느끼는 건 '시간 분산의 징후'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삶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는 건 ‘방향 없이 날아가 버리는 시간’에서 오는 감정이라고. 


현재를 이루는 점들 사이에 아무런 중력도 작용하지 못한다면, 시간은 휩쓸려가고 방향 없는 과정의 가속화가 촉발될 것이다. 


시간은 산만해진 까닭에 더 이상 질서를 세우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삶에는 뚜렷하고 결정적인 결절점이 생겨나지 못한다. 인생은 더 이상 단체, 완결, 문턱, 과도기 등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지만 늙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불시에 끝나버리는 것이다. 


시간이 과거보다 훨씬 더 빨리 간다는 인상 또한 오늘날 사람들이 머무를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 지속의 경험이 대단히 희귀한 것이 되어 버렸다는 사정에서 비롯된다. 쫓긴다는 느낌이 ‘놓쳐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생겨난다는 것도 잘못된 가정이다.


여행하는 한 달 동안 천천히 걸으면서 왜 그토록 나무에 눈길이 갔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단순히 느리게 사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시간의 향기’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의미라는 중력에 대한 열망. 그리고 뿌리를 내리고 머무는 삶에 대한 동경. 


'중력을 잃고 의미에 닻을 내리지 못한 채 근거도 목적도 없이 마구 내달려가고’ 있는 시간에 이제 향기를 돌려주고 싶다. 성급하게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아직 길 위에 며칠이 남아 다행이다. 좀 더 느리게 걷고 ‘머무름’에 대해 더 생각해 볼 며칠이. 


<시간의 향기> _ 한병철


활동적 삶이 절대화되면서 노동은 절대적 명령이 되고 인간은 일하는 동물로 전락하고 만다. 활동의 과잉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사색적 요소, 머무름의 능력은 완전히 실종되고 만다.


약속, 의무, 신의 같은 것은 진정으로 시간적인 실천 양식이다. 그것들은 현재가 미래 속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미래를 묶어두고 현재와 미래를 뒤얽는다. 이로써 안정화 작용을 하는 시간적 연속성이 생겨난다. 이러한 속성은 미래를 불시의 폭력에서 지켜준다.


이야기는 시간에 향기를 불어넣는다. 반면 '점 - 시간'은 향기가 없는 시간이다.


간격이 짧아지면 사건의 연쇄는 가속화된다. 사건, 정보, 이미지 들의 조밀화는 머무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질주하는 듯 빠른 장면의 연속은 인간을 사색하며 머무르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격렬한 활동의 한가운데서 시간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진짜 시간 부족은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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