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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28. 2020

공포의 리스트에 방금 하얀 트럭이 더해졌다

여수 예술 랜드 가는 길

실종된 여자들은 모두 마지막에 택시를 탔다. (…) 이제 나는 택시 앞자리에 앉지 않는다. 오른쪽 뒷좌석, 운전사의 목덜미가 잘 보이는 자리에만 앉는다. 그들의 표정을 쉽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택시 번호를 보내거나 그에 관한 통화를 할 때, 그들의 옆얼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목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이들은 두렵지 않았다.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건, 그래서 긴급 신고 번호를 눌러놓은 핸드폰을 몰래 꼭 쥐고 있게 하는 건, 일말의 불쾌감도 드러내지 않는 매끈한 얼굴들이었다.
-강화길 소설 <서우>  중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는 소설을 덮어버렸다. 한여름 밤임에도 등 뒤로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벌떡 일어나서 커튼을 꼼꼼히 매만진다. 창문으로 그 어떤 빛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다시 한번 문단속을 하고 창마다 잠겼는지 확인한다. 여느 시골 농가들이 그렇듯 대문은 열려 있고, 담장은 낮아 누구나 지나가며 한 번씩 마당을 힐끗 들여다볼 수 있다. 차양을 쳐 놓은 테라스로 연결되는 거실 한쪽의 낮고 넓은 창을 놓고 한참을 씨름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맞춰 봐도 창문의 아귀가 맞지 않았다. 창문마다 잠금장치를 해도 이리저리 밀어보면 힘없이 스르르 열리고 만다. 결국 포기하고 다시 커튼을 꼼꼼히 닫았다. 


테이블로 돌아왔지만 책장을 다시 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는 이 하나도 없는 작은 섬, 선착장 옆 농가에 아이들과 나 셋만 남았다. 짐을 푼 지 하루 만에 일주일 휴가를 다 써버린 남편이 서울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대문은 안 잠가도 된다고 짐을 풀던 첫날 숙소 주인이 말했다. 집 지키는 개가 낯선 사람을 보면 무섭게 짖으니 걱정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안전하다고 느꼈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개가 낑낑거리는 신음 소리가 귀에 거슬리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여수 예술 랜드 가는 길에 보이는 바다


오전에 비가 그친 틈을 타 아이들을 데리고 섬 안에 있는 조각공원에 갔다. 남편이 차를 몰고 갔기에 45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기다려 탔다. 지도 앱을 보니 정류장에서 내려 1킬로 정도만 걸으면 목적지가 나온다기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었다. 비 온 뒤라 날이 흐렸고, 길을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들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문득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처음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몇 백 미터를 걷는 동안 트럭이 마치 우리를 따라오는 듯 우리가 걷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신경이 곤두서자 걸음이 빨라진다. 한창 둘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던 아이들도 조용해졌고, 급기야 막내 아이가 내 팔을 잡아끌며 트럭이 자꾸 우리를 따라온다고 말했다. 곤두섰던 신경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걸음을 멈추고 서둘러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받지 않았고 회의 중이라는 메시지만 돌아왔지만, 통화를 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귀에 대고 계속 떠들어 댔다. 트럭을 쳐다보며 보란 듯이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급히 전송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택시에서 운전기사가 알아채도록 택시 번호를 누군가에게 보내거나 통화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우리를 계속 따라 왔던 트럭


그제야 트럭이 우리를 앞서 떠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린다. 아이들을 더욱 재촉해 목적지를 향해 빨리 걸었다. 이제 2,3백 미터 정도면 목적지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아까 떠나갔던 트럭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걷고 있는 차선에서 마주 내려오다 우리 앞에 딱 멈췄다. 그 순간 심장도 멎는 줄 알았다. 떨리는 손으로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며 아이들 손을 끌고 뛰어서 찻길을 건넜다. 그리고 앞을 향해 무조건 뛰었다. 다행히 목적지가 보이고 사람과 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가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고 실내로 들어갔다. 더 이상 트럭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더 이상 트럭에 탄 남자가 우리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대다수의 남자들이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고 할 정도로 별일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학습해온 공포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 지금 내 아이들 나이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범죄의 예비 피해자라는 자각을 처음 하게 된 것은. 그 이후 30여 년 동안 그 사실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공포는 너무도 흔하게 다가오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모습으로 내 목을 졸라 온다. 


만원인 지하철과 버스, 으슥한 골목길, 혼자 타는 택시 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간색으로 도배를 한 레드 맨 등 공포의 리스트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방금 하얀 트럭이 그 리스트에 더해졌다.  


여수 예술 랜드 조각공원_아이들도 잠시 무서워했으나 금세 잊고 뛰어 논다. 학습된 공포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공포는 어떻게 잉태되었는가:

https://brunch.co.kr/@yoonsohee031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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