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Jul 27. 2020

내 고향은 차라리 바다

남도의 바다 사이를 떠돌며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하곤 한다. 내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 서울, 대전, 상하이, 베이징, 시카고, 부산, LA, 웨스트 팜 비치. 가장 오래 살았다는 서울도 대여섯 번을 들락날락했으니 정착민보다는 유목민처럼 살았다.   


신촌의 한 개인 병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서울이 고향이기도 하고, 초중고 시절을 보냈으니 대전인가 싶다가도, 새로운 삶을 시작한 상하이가 심적으로는 고향 같기도 하고. 늘 떠돌며 살아서인지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한 지역이 내 중심을 강하게 끌어당기지 못한 채, 늘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며 살아왔다. 


언제나 날 끌어당기는 곳, 오랫동안 가 보지 못하면 그리워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 고향이라면,  

내 고향은 차라리 바다. 


돌산도 / 돌산도 방죽포 해변
돌산도 향일암에서 본 바다 / 돌산도 바다


바닷가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바닷가에서 살아 본 기간도 아주 짧을 뿐인데 어쩌다 바다가 내 ‘고향’이 되어 버린 걸까. 풀기 쉽지 않은 수수께끼 거나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일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보지 못하면 보고 싶고, 그 앞에 가면 참아 왔던 숨을 비로소 몰아 쉴 수 있는 곳. 바다는 그런 곳이다.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곳. 모양도 빛깔도 제 각각이지만, 언제든 돌아가면 마음이 쉴 수 있는 곳.  


여수 낮바다와 밤바다


2주째 매일 바다를 보고 있다. 희멀건한 아침 빛이 서려오는 바다. 그 어떤 것에도 가로막힘 없이 투명하게 쏟아지는 햇빛. 짭짤하고 비릿한 바람. 시원하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 이슬비를 맞으며 촉촉이 젖어드는 바다. 매서운 바람이 후려치자 높이 솟아오르는 파도. 낙조로 붉게 물든 수평선. 어둠이 내려앉은 후 반짝이며 인공의 빛들을 반사시키는 해면.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바다를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다 보니, 집을 떠나 길 위에서 오래 떠돌았다는 느낌과 함께 비로소 고향에 돌아왔다는 안도가 동시에 밀려든다. 


증도 우전 해변
청산도 지리청송해변 / 완도 정도리 구계등 해변


해가 저물어 간다. 길다고 여겼던 여행도 저물어 간다. 내 삶도 얼마 안 있어 저물어 가겠지. 삶의 일몰 때는 붉게 물들어가는 낙조를 볼 수 있을까. 설사 예기치 못한 구름이 잔뜩 끼어 붉음 대신 파랑 짙은 노을을 본대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바다를 떠나고 나면 마치 영영 보지 못할 것처럼 다시 그리워지겠지. 아마 몇 달 못 가 어디라도 좋으니 바다로 달려가겠지. 다음에 다시 돌아올 때는 여유 있는 미소로 젊은 날의 내게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을까. 가슴 한쪽이 콕콕 쑤시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 없이. 



이전 17화 공포의 리스트에 방금 하얀 트럭이 더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