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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05. 2020

이토록 아슬아슬한 연재 노동이라니

<일간 이슬아 수필집> - 이슬아

갈수록 책들이 작고 얇아지는 요즘, 두툼한 수필집을 읽고 이슬아를 좋아하게 되었다. 


노브라를 고집하는 그녀에게 브라를 하고 다니라거나, 그렇게 살지 말라고 무례한 훈계와 설교를 들이대는 독자들이 있음에도 내밀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가는 그녀의 단단함이 좋고. 

그런가 하면 “<일간 이슬아>의 소재는 이슬아 씨의 생활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슬아 개인을 알 수 있을까?” “나 자신이면서 내가 아닌 목소리라는 사실을 글을 써본 이들은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면서 글과 작가와의 간극을 이해하는 독자들의 지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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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슬아를 좋아하게 만든 건 그녀의 ‘성실함'이다.  

매일 글 한 편을 마감한다는 건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전혀 다듬지 않은 초고 한 편을 쓰는 일도 ‘매일’할 것이 전제되면 허덕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이토록 아슬아슬한 연재 노동’을 이슬아가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 이슬아_ 두께가 3센티는 된다


그 방식 중 하나는 어른이 골라준 옷을 입고 오는 부류와 자기가 고른 옷을 입고 오는 부류를 나누는 것이었다. 옷이 얼마나 많은 지와도 상관없었고 얼마나 좋은 옷인지와도 상관이 없었다. 다만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 애와 모르는 애가 있었다. 그걸 모르는 애는 남에 대해서도 뭘 모를 게 분명했다. 나는 적어도 자기 옷을 직접 골라 입고 등교하는 애랑 놀고 싶었다. 


한때 나는 성별이 짐작되지 않는 몸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아는 여자애들은 대부분 타고난 몸을 오랫동안 미워하며 자라곤 했다. 어떻게 하면 남의 눈을 빌리지 않고 나의 몸을 볼 수 있을까. 아직 나는 그래 보질 못했다. 당연하고도 어려운 그 자유를 분명 희망하고 있지만 내 몸에 히스테릭했던 평생의 습관이 쉽게 어디 가지는 않을 것이다. 


호언장담이 실패로 돌아가서 상처를 받은 날에 나는 꼭 복희에게 가서 울곤 했다. 복희는,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뭐랬니, 같은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안아주고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복희 = 이슬아 엄마)


모르는 외국 배우들 사이를 헐벗고 걸어 다니는 건 좀 신나고 홀가분했다. 아무것도 안 입어서 오히려 분장 같고 거짓말 같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용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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