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신문
신문을 집어 들고 얼른 문을 닫았다. 이미 따라 들어와 버린 바람 한 조각이 채 여미지 못한 옷깃 사이로 스며든다. 새벽바람이 묻어 있는 신문의 차가운 감촉에 더덕더덕 붙어 있던 잠의 찌꺼기가 떨어져 내린다. 부르르 몸을 떠는 강아지 털에서 떨어지는 먼지처럼.
잠시 신문지 사이에 코를 들이박고 잉크 냄새를 맡는다. 건강에 해롭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날것 그대로의 냄새를 폐 속 깊이 들이마실 때 팽팽히 차오르는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죽하면 ‘Paper Passion(종이 열정)’이라는 향수가 있을까. 종이와 잉크 냄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니 덜 외롭다.
디지털은 잊기 위한 것이지만, 아날로그는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사진작가 로버트 폴리도가 말했다. 똑같은 뉴스를 컴퓨터나 모바일 화면으로 접할 수 있지만, 그 차고 매끄러운 화면은 저 너머 세계와 나 사이를 갈라놓는다. 냄새도, 맛도, 감촉도 모두 저 세계 안에 묶어 놓고, 점 하나만큼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대로 감각할 수 있는 물성 그대로 내 품에 안긴 종이 신문은 다르다. 잉크 냄새를 들이마시며 인쇄된 기사의 거친 결을 더듬을 수 있어 좋다.
오늘도 만나지 못했다. 그저 신문에 묻어 있을 그의 손길을 느껴볼 뿐. 차가운 새벽바람에 살짝 얼어 있을지 모르는 손. 진한 잉크 냄새가 깊이 배어 있고 신산한 노동으로 거칠고 투박해졌을 손. 신문에 묻어 있을 그의 체취로 모습을 가늠해 보려고 애쓰지만 막연하다. 학비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두운 새벽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십 대 소년을 떠올려 보지만, 중년 여자나 60대 노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제보다 일찍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음에도 신문만 놓여 있을 뿐 그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신문이 툭 떨어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현관에 달려가 문을 열었던 어느 날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마법처럼, 연기처럼 재빨리 사라져 버려.
아침 식탁에 얌전히 올려놓은 조간신문을 누군가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한다. 새벽바람의 차가운 감촉도, 배달 소년의 땀 내음도, 진한 잉크 냄새도 사라진 건조하고 미적지근해진 신문을. 그가 놓친 모든 감각은 내 몸 안에, 그리고 기억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종이신문을 추억하며 쓴 '허구의 에세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