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쑤청(上海书城)
10 알아듣다: 책 속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상하이쑤청(上海书城)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몽땅,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의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헐레벌떡 달려 들어가 숨을 깊이 들이쉰다. 한참 동안 호흡곤란으로 부족했던 산소가 공급되자 머리가 뻥 뚫린다. 바로 이 공기. 갓 인쇄해 낸 신선한 잉크 냄새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내 근육을 이완시킨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어깨를 짓누르고, 기다림의 시간이 엿가락처럼 눅진눅진 눌어붙는 오후. 푸조우루(福州路)를 걸었다. 무조건 책이 많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외국어전문서점(外文书店), 상하이문화빌딩(上海文化商厦), ART 서점 등 여러 모양의 서점들이 줄지어 있다. 서점 뿐 아니라 미술 관련 재료상들과 경극을 관람할 수 있는 극장도 눈에 띈다. ‘문화의 거리’답게 많은 젊은이들이 서점과 미술 재료상들을 드나들며 북적거린다. 마침 상하이에서 가장 큰 서점인 상하이쑤청(上海书城)이 보이기에 바로 뛰어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부터 7층까지 차례로 오르며 서가 사이를 돌아다닌다.
“서가 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알 수 없는 그 숱한 지식과 지식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
각 층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어깨 부딪히지 않고 책을 볼 수 있을 만큼 공간이 꽤 널찍널찍하다. 게다가 평일 낮이라 사람이 적어 한적하다. 2010년 UN에서 직장인들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을 조사한 통계를 보면,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인데 반해 한국은 1.3권이란 초라한 숫자를 기록했다. 그보다 조금 낫다는 중국이 2.6권이었는데, 그런 상하이 최대 서점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쩐지 쓸쓸하다. 사람이 생각보다 적어서는 아니었다.
서점은 책을 단순히 많이 팔기 위한 상점이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서점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서가에 서거나 앉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는 사람들이다. 상하이쑤청의 공간은 넓지만 너무 차갑다. 간혹 서가 사이 복도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통해 온몸을 관통해 들어갈 냉기에 내 몸이 다 시리다. 이 넓은 공간에 곳곳에 작은 의자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준다면, 그도 어려우면 바닥이라도 차갑지 않게 카펫으로 해줬다면 저기 앉아 있는 저들의 모습이 이토록 황량하지는 않았을 텐데. 세상의 다른 곳들은 모두 아니더라도, 책방만은 조금 친절해야 하는 게 아닐까? 사지 않고, 혹은 사지 못하고 읽기만 하는 사람들, 나처럼 위로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가운 바닥에 나란히 앉아 책 한 권 손에 들지 않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유독 마음 시리다. 아직 가을의 초입, 남은 더위의 뒤끝에 가끔 땀을 흘리기도 하는데, 저들은 이미 한겨울이다. 가능하다면 이불이라도 갖다 덮어 주고 싶다. 눈을 감은 채 자고 있는 이들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서가 모퉁이를 돈다.
그 순간, 중국 문학 이론 코너에 서 있는 한 할아버지가 유독 눈에 띈다. 오래도록 빨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낡고 색 바랜 재킷 속에 역시나 더럽고 낡은 파란색 후드 티를 입은 할아버지는 빨간 야구모자를 쓰고 있다. 딱 보면 영락없이 역이나 지하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노숙자 행색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왠지 악취가 날 것 같은. 그런 행색 자체는 이상할 것도 눈에 띌 것도 없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중국 문학 이론 코너에 서서 책 한 권을 들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책을 읽고만 있었어도 그렇게 시선을 한참 붙잡지는 못했을 텐데.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작은 메모지에 뭔가를 열심히 쓰는 할아버지. 수전증이 있는지 그 손이 심하게 떨린다. 저 손으로 과연 뭔가를 쓸 수 있는 걸까? 심한 손떨림으로 오래도록 책과 메모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할아버지는 내 시선을 한참 동안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겉모습으로 남을 단칼에 판단하고 단정하며 쉽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 없이 쉽게 흘러가는 삶에서 가끔 이렇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주로 서점 안에서 만나게 된다.
어쩌면 저 할아버지는 천재 작가나 문학 교수였거나 아직도 그럴지 모르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진짜 책 한 권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노숙자지만, 날마다 서점 안을 돌며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하고 싶은 공부들을 하며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일 살 맞대고 사는 남편의 삶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데, 한 순간 이름도 모르고 스쳐갈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책 속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언젠가 쓸 소설 한 편에 할아버지의 캐릭터를 구상해 넣는다.
몇 시간씩 엉엉 울다 일어난 날, 삶의 밑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날, 난 어김없이 서점을 찾는다. 서점에서 헤맬 수 없다면, 어딘가에 꽂혀 있을 책 한 권이라도 찾아 그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날 책만은 큰 품으로 그저 받아들여 주고, 나를 품어 준다.
책으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인간으로 잘못 태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시 서점을 헤맨다.
상하이쑤청 (上海书城)
런민광장(人民广场)에 위치한 상하이 최대 서점.
7층 건물 전체가 전부 서점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층별로 정리되어 있고, 음반과 문구류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