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더듬다: 문득 훌쩍 다른 세계로 건너가고 싶을 때

황푸강(黄埔江)

by 윤소희

문득 훌쩍 다른 세계로 건너가고 싶을 때

15 더듬다: 문득 훌쩍 다른 세계로 건너가고 싶을 때문득 훌쩍 다른 세계로 건너가고 싶을 때

@황푸강(黄埔江)




오늘처럼 내 손이


-류시화



오늘처럼 내 손이 싫었던 적이 없다

작별을 위해 손을 흔들어야만 했을 때

어떤 손 하나가 내 손을 들어 올려

허공에서 상처 입게 했다

한때는 우리 안의 불을

만지던 손을


나는 멀리서 내 손을 너의 손에

올려놓는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내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었다

새의 날개인 양 너의 손을 잡았었다.

손안 가득한 순결을

그리고 우리 혼을 가두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내 손이 싫었던 적이 없다

무심히 흔드는 그 손은 빈손이었다




문득 다른 세계로 훌쩍 건너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강을 찾는다. 와이탄에서 황푸강(黄浦江)을 따라 남쪽으로 10여 분 정도 걸으면 제2의 신티엔띠(新天地)라고 불리는 라오마토우(老码头:The Cool Docks)가 나온다. 이곳은 ‘부두’란 뜻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황푸강의 선착장이었던 곳, 부둣가의 기름 제조공장 자리에 예술가를 위한 작업장과 문화시설이 들어오면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일 만한 공간으로 새 단장을 했다. 1930년대 일본군 사령부로 쓰이던 건물을 노출 콘크리트 외벽을 그대로 둔 채 리모델링한 워터하우스 호텔(上海水舍酒店) 등 개성적이고 모던한 분위기의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를, 그리고 라오마토우 앞편에 양광사탄(阳光沙滩)이라는 손바닥만 한 모래놀이터 같은 인공 모래사장을 보며, 상하이 시의 ‘여백’을 느낀다는 이도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고층빌딩들과 모든 ‘새로움’에 지칠 때, 그저 '훌쩍' 건너뛰어 모래사장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좀 더 다른 세계로 '훌쩍' 건너고 싶다면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 내가 사는 이 세계와 전혀 다른 별세계는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개발되지 못해 휑하게 버려진 낡은 건물들과 서민들의 낡고 초라한 집들이 여전히 '재개발구역'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풍광이 좋은 곳에 산다는 이유로 자본의 힘에 밀려 지금도 부서지고 있는 곳. 낡고 빛바랜 옷가지와 이불들이 부서진 돌담 너머에도, 새롭게 높은 건물을 짓고 있는 건설 현장에도 나부낀다. 언젠가는 완전히 밀려나겠지만, 그 순간까지 그 틈새를 비집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색 바랜 빨래들의 그 퇴색한 빛에 눈이 시렸다.


다시 '훌쩍' 다른 세계로 건너버리고 싶다.


황푸강2.jpg 푸싱쫑루(复兴中路) 선착장

라오마토우 근처에 있는 푸싱쫑루(复兴中路) 선착장에서 중국돈 2위엔(元) 하는 배를 타고 황푸강을 건넌다. 2위엔을 건네고 받은 토큰을 던져 넣고,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사이에 서서 배가 도착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이 선착장에서 조금 걷다 보면 황푸강을 떠다니는 수많은 유람선들을 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온다. 배의 크기나 서비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0위엔 정도면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황푸강의 주요 경치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가 떨어지고 빌딩들이 화려한 조명들을 켜기 시작하는 시간이면 유명한 상하이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유람선에 몸을 싣는다. 고단한 이들이 오토바이를 붙들고 있는 이 선착장 바로 곁에도 눈 부시게 하얀 요트가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강물 위에 떠있다. 부호들 개인이 소유한 요트들도 있지만 요트 클럽 소유의 요트는 한 시간에 약 8천 위엔 정도면 빌릴 수 있다. 다른 세계는 역시 결코 멀리 있지는 않다. 건너기가 쉽지 않을 뿐.


드디어 문이 열리자 배 위로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우르르 올라탄다. 삶이 지루하고 밋밋해서, 색다른 풍광과 경험이 필요해 배를 타는 나 같은 사람들은 부웅 하는 뱃고동 소리도, 흙탕물처럼 탁하게 흐르는 저 황푸강도 낭만이고, 배 위에 빽빽이 들어선 오토바이들이나 그 오토바이를 붙들고 힘겹게 서있는 사람들조차도 마구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는 신기한 구경거리이다. 하지만 난 보고 말았다. 카메라의 셔터 소리를 일부러 외면해 고개를 돌리는 이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을. 뱃고동 소리 역시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엔진 소리처럼 일상적인 소음이고, 강을 건너는 배도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와 다를 바가 없다. 시큰둥한 표정의 그들에게 강을 건너는 건 그저 삶이다.


황푸강.jpg
황푸강1.jpg


그래도 '훌쩍' 이렇게 다른 세계로 건너뛰고 싶다.

이 강을 건너면 정말 다른 세계가 있는 걸까? 이 강에서 무엇을 보는가?


요단강을 건너 이 삶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가. 레테(Lethe)의 강을 건너며 강물을 한 모금 떠마시고 과거의 모든 기억과 번뇌를 잊길 원하는가. 슬픔과 비통의 아케론(Acheron) 강을, 탄식과 비탄의 코키투스(Cocytus) 강을 불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을, 그리고 증오의 스틱스(Styx) 강을 건너 진정 하데스 왕국으로 가길 원하는가. 원치 않아도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건가. 아니면 그저 이 강이 그대에겐 살면서 겪고 넘어가야 할 인생의 고비인가. 이 강은 발을 딛고 있는 현실과 이상에 대한 경계인가. 고요하게 당신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자궁 안인가. 스스로도 인식 못하는 모든 꿈들이 저 아래 깊이 흐르는 무의식 지대인가. 인간들 사이사이에 흐른다는 슬픔의 강인가. 아니면 삶 그 자체인가.


huangpu.png 상하이 황푸강


그저 빛을 찾고 싶었다. 훌쩍, 다른 세계로 건너뛰면, 강 건너에는 빛이 있을 것 같아서. 빛을 찾아, 새로운 세계를 찾아 강을 건너기 위해 배 위에 몸을 실었는데, 강을 건너는 동안 강물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 내가 찾는 꿈과 이상은, 그리고 빛은 점점 더 강 저 아래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배는 튼튼하지 못해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금방이라도 배를 집어삼킬 것처럼 검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꿈에 대한 열정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인생의 슬픔이 깊으면 깊을수록, 강물은 점점 더 깊어지고 물결은 거세진다.


이래도 이 강을 건너야 하는가? 이래도 건너길 원하는가? 아니 강을 건너는 방법이 배를 타는 것뿐인가?

나는 오랜 고민 없이 몸뚱이를 붕 띄워 강물 속으로 던져 넣는다. 사람들 사이를 흐른다는 슬픔을 껴안고, 이루지 못한 꿈과 이상을 껴안고,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진 삶을 껴안고. 그렇게 깊고 깊은 강물이 되어 고요히 흘러간다. 스스로가 강물이 되어 흐르자, 강물이 아무리 깊고 물결이 거세도 이미 강 저편에 닿아 있다.


‘부웅’하는 뱃고동 소리. 오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배는 이미 건너편 동창루(东昌路) 선착장에 도착했다. 겨우 3,4분쯤 흘렀을까?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문이 스르르 열리고 여기저기 시끄럽게 시동을 건 오토바이들이 땅 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슬픔의 강이든, 삶의 강이든, 강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들에게 이 강은 일터로 가기 위해, 또는 물건을 사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건너야 했던 강일뿐이다.


건너고 있으나 다 건너지 못한,

나의 꿈, 나의 슬픔, 나의 삶을 뒤로하고 나도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하고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했다. 당시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을 의미했다.



황푸강(黄浦江)


양쯔강(扬子江) 하류의 지류로 상하이는 황푸강을 중심으로 푸동(浦东)과 푸시(浦西)로 나뉜다. 황푸강 서쪽 와이탄에는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이 멋지게 늘어서 있고, 반대편에는 동팡밍주(东方明珠)와 현대적인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서 장관을 이룬다. 특히 황푸강의 야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황푸강의 동서를 건너게 해주는 각종 페리와 황푸강을 따라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유람선이 많이 운행되고 있어 황푸강 주변 경치를 관람하기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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