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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Nov 04. 2020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걸었다"

<산책과 연애> - 유진목

"읽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장이 있습니다
전부 읽어도 저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데, 전부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책장을 후다닥 넘기며 금세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말들의 흐름’이라는 시리즈 중 5번째 책이다. 


커피와 담배,  

담배와 영화,  

영화와 시,  

시와 산책,  

산책과 연애,  

연애와 술,  

술과 농담,  

농담과 그림자,  

그림자와 새벽,  

새벽과 음악으로 이어지는 끝말잇기 놀이. 


<산책과 연애> - 유진목


<산책과 연애>  

사실 제목은 너무 평범해 큰 기대 없이 읽었다. (다 읽기 전까지 끝말잇기 시리즈라는 걸 몰랐기에) 

하지만 내용은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걸었다. 현관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부터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신호가 바뀌지 않는 횡단보도를 비껴 어느 방향으로나 내처 걸었다. 그러다 여기가 대체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그 순간들이야말로 나와 연애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무탈히 살아 있는 여러 이유들 중에 하나쯤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애 대상에게 느끼는 살의를 가라앉히기 위해 산책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아래와 같은 대목에선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처럼 남자와만 연애를 해본 사람들은 아래의 목록에서 몇 개쯤은 공감할 것이다. 다들 어쩜. 하나같이. 똑같이. 거기서 거기." 

질문들: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좋았어?
-원래 이런 사람이었니?
-내가 널 행복하게 하니?
-나한테 고마운 건 없니?
-넌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나보다 그게 중요해?
-내가 언제?


연해했던 이들 중에 "하루끼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이가 없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휴우. 


나는 애인에게 느끼는 살의를 가라앉히기 위해 걸을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시 걷기는 다양한 방면에 도움이 된다. 

예기치 못한 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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