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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Nov 05. 2020

안다, 자기 심장을 찌르려고 칼을 쥔 사람을 껴안는 일

<그냥, 사람> - 홍은전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을 알아가는 사람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방법은 가장 안전한 방식이기에 조금은 비겁한지도 모른다. 저자처럼 현장에 직접 발을 들이지 않는 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일조할 수 없고, 심지어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보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인다. 가까이 들여다 보고 정말 ‘알기’ 시작하면, 무척 고통스러워진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되면 몹시 불편해진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소, 돼지에게 하듯 장애인의 몸에 1~6급의 등급을 매겨 각종 서비스를 제한하고, 생계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양의무자를 규정하고 그 책임을 떠넘긴다. 

(장애인 oo가) 노점을 시작했지만 소득이 33만 원을 넘으면 수급권을 박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어쩔 수 없이 노점을 접었다. 

(선감학원은) ‘불량 행위’를 하는 자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빈민들을 추방하고 격리하기 위함이었다. 

산란계(닭)의 경우 쓸모가 없는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거대한 칼날이 24시간 돌아가는 분쇄기에 넣어 비료로 만든다거나, 새끼를 낳는 게 목적인 종돈(돼지)의 경우 평생 동안 ‘스툴’이라는 형틀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한 채 강간과 임신, 출산을 반복하다가 ‘회전율’이 떨어지면 햄버거 패티 같은 분쇄육이 된다는 것. 



불편한 진실. 어쩌면 그래서 자꾸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멀리 추방하려고 애쓰는 건지 모르겠다.  

저자는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싸운다.  


신영복은 ‘아름다움’이 ‘앎’에서 나온 말이며, ‘안다’는 건 대상을 ‘껴안는’ 일이라 했다. 언제든 자기 심장을 찌르려고 칼을 쥔 사람을 껴안는 일,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진짜 ‘알고’ 싶기는 했던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냥, 사람> - 홍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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