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허구가 범벅된 일기
일기를 꽤 오래 썼는데, 내가 쓰는 일기는 현실에서 곧잘 허구로 넘어가곤 했다. 일기를 사실대로 적지 않는 버릇은 이제는 고질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 언니와 한 방을 쓴 적이 있다. 피를 나눈 자매는 아니었지만, 언니가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언니가 생긴 게 좋았다. 그 나이에 누군가와 방을 함께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언니와 나는 서로 배려하며 꽤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 언니가 불편해졌다. 예전과 다르게 나를 대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언니 앞에 서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기장에 적혀 있던 일탈을 트집 잡으며 언니가 내 일기를 보고 있었다는 걸 밝힌 것이다. 언니는 분명 나를 돕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그 순간 언니에 대한 내 마음은 완전히 닫혀 버렸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기 쓰기도 종료되었다.
그 후로도 일기의 형식으로 글을 계속 써왔지만, 내 일기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다. 상대와 나의 시점을 바꿔 쓰기도 하고,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주어를 모두 빼고 쓰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어 보면,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게 되어버렸다.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 내 일기장을 본다면, 그곳에 남은 기록이 내 지난 삶으로 남을 것이다. 거기 적힌 문장 중 일부는 분명 사실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내게 일기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재료로 진실을 만들어가는 매일의 몸부림이었는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