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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Nov 17. 2020

'나'에 대해 쓰는 일이 오히려 오해를 부른다 해도

2020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은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가 받았지만,  

가장 마음 깊이 들어온 소설은 최은미의 <내게 내가 나일 그때>였다. 


<내게 내가 나일 그때>는 주인공 ‘유정’이 친족 성폭행 이야기를 소설로 쓴 뒤, 그 소설이 자전적 경험을 모티프로 한 것임을 밝힌 후 겪게 되는 변화를 담고 있다. 


저는 너무 지쳤습니다, 선생님. 
이제 한 방울의 기력도 남아 있지가 않아요. 
여기까지도 충분히 버거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어요. 

몸안의 모든 수분, 모든 피를 빼내고, 모든 습기를 말리고, 비틀고, 보이지 않는 입자로 갈고 갈아서, 완전히 부수어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없애버리는 것. 몸을 없애는 것. 이 지긋지긋한 몸을 없애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몸을 없애는 것. 유정이 오랫동안 원해온 것은 그것이었다.

-최은미 소설 '내게 내가 나일 그때' 중 


가해자의 사과나 반성은커녕 가까운 가족들의 원망과 불평까지 지켜봐야 하는 ‘유정’은 정녕 실패한 것일까. 

글을 쓰는 일이 마치 아무 소용도 없는 일처럼 보이고 심지어 주인공을 더 고통 속으로 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글을 온몸으로 써 내려간 후 ‘유정’은 분명 그 이전의 ‘유정’과는 다른 ‘유정’이 되었음을 믿는다. 


'나’에 대해 쓰는 일이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나를 나로 살게 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내가 쓴 것이 오히려 나에 대한 부정확한 말들을 부추기고 다시 그 말들이 나를 가두는 딜레마 속에서도, 쓴 것의 구속은 오해에 갇히는 구속이 아니라 오해라는 구속에 저항하는 구속임을, 작가들은 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백지은이 쓴 리뷰 중 


그렇기에 절망 가운데서도 또다시 ‘쓰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거겠지. 

    

2020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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