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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Dec 09. 2020

정신과, 상담, 약물이란 말로 직접 물어 주세요

<나의 F코드 이야기> - 이하늬

정신과 질병은 F코드로 분류되어 있다. 나는 F코드가 여러 개다. … 처음 받았던 진단명은 F41.2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다. 다음 병원에서는 F32 우울병 에피소드와 F42 강박장애 진단을 받았다. 최근에 받은 진단은 F313 양극성 정동장애, 주요 우울 삽화다.


이 책은 ‘F코드’로 분류되는 정신과 질병이 있는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와 다른 환우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우울증 이야기가 전혀 우울하지 않게 씌어 있어 좋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좀 더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 같아 힘이 된다. 


나 역시 F코드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 우울감이 극에 달해 정신과를 찾아갔고, 나이 든 백인 남성 의사 앞에 내 상태를 털어놓은 후 ‘major depression’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상하이에 살고 있던 나는 속 시원히 상담할 한국인 정신과 의사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상담 후 뭔가 더 답답해졌고, 약을 한 보따리 받아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특히 임상심리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정신과 진료에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가족이나 주변에서는 약이나 상담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내 우울증이 걱정되고 염려된다면 우울증, 정신과, 약물, 상담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직접적으로 물어봐주는 편이 편하다. ‘마음의 감기’ 같은 은유를 사용하는 일은 오히려 정신 질환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것, 숨겨야 할 것으로 만든다…. 특히 자살 사고와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해?’라고 직접적으로 묻는 편을 권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울증, 정신과, 약물, 상담 같은 말들은 숨겨야 할 수치스러운 단어가 아니다. 그런 편견만 사라져도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F코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회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울, 불안, 예민, 강박 등은 더 이상 특이한 감정이 아니다. 그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을 자신의 감정 이야기, F 코드 이야기를 더욱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기를… 


<나의 F코드 이야기> - 이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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