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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Dec 19. 2020

상대를 유혹해 굴복시키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단다

마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들아,

힘으로 제압하고 피를 빨아먹는 따위로는 절대 네가 원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얻을 수 없어.

끊임없이 유혹하여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라. 수많은 그녀들이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붉은 심장을 네게 바칠 테니.


너 자신을 상대의 온갖 상상을 자극하는 물건으로 만들어라.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백처럼,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바람이 되어라.

모든 걸 드러내지 말고 신비한 베일로 살짝 덮되, 그 베일을 들추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듯한 인상을 주어라.


다소 주저하는 듯 보여도,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전혀 방어가 안 되어 있는 무방비 상태를 연출하라.

똑 부러지게 행동하기보다는 상대가 헷갈리도록 애매하게…… 좀처럼 파악하기 힘든 수수께끼가 되어라.


제삼자를 끌어들여라. 그래야 그 사람에게서 너를 떼어 놓고 싶다는, 너를 소유하고 싶다는, 너의 육체와 영혼을 온전히 독차지하고 싶다는 열망을 상대에게 불어넣을 수 있지.

상대의 공허한 가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면의 빈 공간을 후벼 파,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라고 속삭여라.


예기치 않았던 편지를 보내거나, 갑자기 불쑥 나타나거나, 상대를 예기치 못한 장소로 데려가거나…… 상대가 아무것도 예견치 못하도록 끊임없이 긴장과 호기심을 유발하라.

분명하게 말하지 말고, 무심결에 흘리는 듯,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무심코 뱉은 듯한 말들로 그저 암시만 해라.


성급히 굴지 말고, 절대 진부한 표현으로 칭찬하지 말고 너무 구체적인 약속은 하지 말아라.

상대를 위해서라면 사회적 금기 따위 어길 수 있다는 느낌을 살짝 보여주며, 죄책감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은밀한 일을 공모해라.


미묘한 몸짓이나 무심코 한 행동들로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관심을 투자하고 있는지 슬쩍 비춰라.

관심을 보였다가 거리를 두고, 즐거움이 있은 후엔 일부러 모습을 감추어 애타게 만들라.

겉으로는 냉정하고 무관심한 듯한 태도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되, 진한 욕망이 배어 있는 시선과 목소리, 행동으로 피부 깊숙한 감각을 뒤흔들어라.


아들아,

상대를 유혹해 굴복시키는 건 사실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단다. 그러니 거리를 두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라고 말하고 싶구나. 그 어떤 상대도 너의 상상과 환상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 유혹이 성공하고 나면 권태와 불신, 실망으로 지옥의 나락에 떨어지나니…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거리를 잘 조절해라.


특히 유혹하는 상대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거리 조절이 필수란다. 금세 달궈져 넘어오는 상대를 보면 엄마는 종종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버리곤 했지. 넌 절대로 이 엄마의 실패의 전철을 밟지 말아라. 상대를, 그리고 네 스스로를 애타게 하려면 끊임없이 고통과 갈등을 야기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도록!


혹시 상대가 먼저 너를 유혹하려 든다면? 유혹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무관심뿐이란 걸 꼭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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