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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27. 2021

어느 3년 차 사진사의 하루

몰카와 남의 사진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셔터를 올리고 '포토 스튜디오'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유리문을 열고 3년 동안 일했던 작은 공간으로 들어선다. 3년이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 공간에는 내 체취와 흔적이 서려 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이 곳의 공기가 낯설다. 내가 곧 떠날 것을 아는지 이 작은 공간 전체가 팩 하니 토라진 느낌이다. 



하루 10시간, 일주일에 6일을 이곳에서 보냈다. 경력 3년 차가 되어서야 겨우 월급을 130만 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많다고 할 수 없는 월급이 부담된다고 사장은 나를 해고했다. 대신 경력이 없는 젊은 여직원을 뽑으며, 어린 아기들 사진 찍을 때 딸랑이를 흔들며 잘 얼러줄 거라고 했다. 어쨌든 사장은 그걸로 한 달에 50만 원을 벌게 되었다고 뿌듯할 것이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떤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까? 사진관에서 일한 3년의 경력은 그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진관에서도 월급이 많다고 싫어하니까… 아니다. 이 고민은 내일부터 하자. 시장에서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나는 3년 차 사진사다. 마지막 하루까지 프로답게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눈을 바로 맞추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주저하는 남학생.  

“증명사진 찍으러 오셨나요?” 

“… 음… 저 핸펀에 있는 사진… 인화돼요?” 

“물론이죠. 저희 PC에 바로 연결할 수도 있고 카톡 아이디 등록해서 전송할 수도 있어요. 원하시면 30분 안에 해드릴 수 있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남학생은 얼굴이 벌게져서 다가오더니 시선을 외면한 채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건넨다. 

“어떤 사진 뽑으실 건가요?” 

3만 장이 넘는 사진들이 들어 있는 남학생의 스마트 폰을 PC에 연결한 뒤 화면에 튀어나오는 사진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맹인처럼 표정을 관리한다. 고객의 사진에 대한 어떤 주관적인 견해도 표정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잠시 흘긋하며 내 표정을 살피던 남학생이 사진 몇 장을 가리키고, 나는 역시 표정을 지운 얼굴로 골라진 사진들을 클릭해 PC에 새로 만든 폴더로 옮겨 담는다. 

“30분 정도면 되는데, 기다리시겠어요?” 

“이따 찾으러 올게요.” 

결제를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문을 열고 휙 나가 버린다. 나는 남학생이 남기고 간 사진들을 인화하며 한숨을 쉰다. 마지막 근무일, 예술 사진은 찍지 못할 망정 몰카 사진 인화라니… 사진에는 한 여학생의 다리, 치마 밑으로 속이 보일락 말락 한 아슬아슬한 경계 등이 담겨 있다. 쭈뼛거리던 남학생의 태도나 사진의 노출 수위가 비교적 낮은 걸로 보아 상습범은 아닌 것 같아 눈감아 주기로 했지만, 이런 일을 할 때는 자괴감이 든다. 



가끔 뉴스에서 몰카 촬영이 최근 5년 새 8배 늘었느니, 전체 성범죄의 5분의 1이니 몰카로 인한 범죄니 하는 기사를 보면, 괜스레 공범이 된 듯 뜨끔하다. 물론 수위가 높은 사진을 사진관에 들고 와 뻔뻔하게 인화해 달라는 성범죄 범인은 없겠지만. 


그래도 인화를 할 때 기분이 제일 좋다. 인화되지 않은 사진은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 해도 연주되지 않은 악보처럼 미완성일 뿐이니까. 스마트 폰을 사용하면서 굳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나가지 않아도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게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 스마트 폰 안에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방대한 양의 사진이 들어 있다. 하지만 사진의 양이 늘어나자 인화해서 간직하는 사진은 오히려 줄어 간다. 그 많은 사진을 정리하고 추려서 인화까지 하는 일을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라인에서 인화해서 배송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많고 인화 서비스 어플도 있어 사람들이 사진관에서 인화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이런 동네 사진관이 2000년 대 이후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다. 



“어서 오세요.” 

몸에 딱 붙는 블랙 원피스를 입은 긴 머리 여자가 들어선다.  

“저어… 사진 촬영도 하죠?” 

“네 물론이죠. 어떤 사진 찍으실 건가요?” 

“옷을…” 

“아, 많지는 않지만 옷 몇 벌 정도 비치되어 있고 대여해드려요. 지금 입고 계신 옷도 잘 어울리시는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옷을 안… 입고 누드로 찍을 수 있나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나도 모르게 눈앞에 있는 고객의 몸매를 훑어보고 만 것이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미인은 아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고, 몸에 군살이 없어 누드 사진을 한번 찍어 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누드라니…  

“저야 찍어 드릴 수 있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여자는 그저 돈을 내고 자기 사진을 찍어 달라고 찾아온 건데, 나는 마치 성상납이라도 받는 대단한 권력의 소유자라도 된 듯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촬영 후 썸 타는 애프터가 당연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착각마저 들고. 


사장은 어차피 저녁때 문 닫을 때나 와서 마지막 월급을 정산해 주기로 했으니, 내 마음대로 잠시 사진관 문을 닫기로 했다. 바깥 셔터를 내리고 유리문을 닫고 안에서 커튼을 친다. 작은 스튜디오 안에 조명을 켜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여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카메라를 들고 섰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자신의 누드를 사진으로 남기려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은 적 있다. 하지만 서로 잘 아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도 좋다고 여겨지는 가까운 사람에게 사진을 맡기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낯선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역시 내가 촌스러운 거겠지만. 


여자는 이미 이 사진을 위해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해왔던지, 마치 전문 누드모델이라도 되듯 다양한 포즈를 잘 취해 주었다. 두 시간 정도 사진 촬영을 마치니 온몸이 땀에 젖었다. 옷을 입고 나오는 여자를 앞에 세우고 섰는데, 갑자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사진관에서 일하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 것이다. 오늘 찍은 이 많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골라내고 보정을 하고, 내 손으로 인화해서 전해 주고 싶다. 이 사진들을 사장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목이 바짝 타들어갔다. 내 애인도 아닌데 누군가의 누드 사진을 다른 누구에게도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니… 


“저, 이런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이왕 이 일을 제게 맡겨 주셨으니, 제가 끝까지 하고 싶습니다.” 

여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오늘이 여기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거든요. 저한테 이 일을 맡겨 주셔도 될까요? 제 연락처 여기 있습니다.” 

그제야 여자는 알아들은 듯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죄송해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이제야 생각이 났어요.” 

여자는 자신의 누드 사진을 들고 있는 남자와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따로 만나는 걸 선택해야 할지, 다시 또 생판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누드 사진이 인계되는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여자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는 이 여자의 누드 사진 파일을 내 USB에 담을 것이다. 사진관에서 일한 3년 차 경력을 마감하는 퇴직금으로 충분하다. 다른 곳에 사진을 함부로 올려 공개하지만 않는다면 초상권 침해도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내가 간직하겠다는데 누가 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나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며 사진관에서의 마지막 날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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