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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Dec 29. 2020

따지고 보면 난 한 번도 '윤소희'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예전의 나, 지금의 나, 아무도 모르는 나...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그 후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과거의 나를 모르고, 그 이전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모른다.
 같은 이름, 같은 주민등록번호로 살고 있으나, 나는 분명 예전의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다.

 


신앙


서른 살에 예수를 만나고 구원받으며 새 사람이 되었으니, 예전의 나는 죽었고 지금은 새로운 내가 되어 살고 있다. 


가족


결혼 후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네 식구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을 내 가정이라고 여기며, 예전에 내가 자라온 가정과는 다른 모습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알던 엄마, 아빠의 다정하던 모습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고, 나는 친정이 두 곳이라 친정 갈 때 시댁의 눈치를 두 배 더 보아야 하는 며느리다. 


추진력


예전에는 잘 저지르고 거침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투견장에서 상대에게 물려본 개처럼 두려움을 알고 망설이며 몸을 사린다. 저지르고 싶은 것을 100가지쯤 생각해 봐야 한 가지 저지를까 말까 하며 움츠러든다. 예전에 남의 시선 따위 두려워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즐기는 나였다면, 지금은 튀지 않으려고 남들과 비슷한 가면을 쓰고 아닌 척한다. 


사랑


예전에는 늘 새로운 사랑을 갈구했고, 쉽게 마음이 변했으며, 사랑을 한 번 하면 목숨까지는 못 버려도 가진 것 모두는 버릴 수 있어야 사랑이지 했다. 지금은 화끈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긴다. 


성취


한때 잘 나가는 ‘엄친딸’이었다. 예전에 나를 아는 이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안타깝다’ 또는 ‘아깝다'라고 말한다. 사실 나는 그런 말이 몹시 듣기 싫다. 기쁘게 잘 지내고 있다가도 그런 말로 내 마음을 헤집어 놓으면, 괜히 자기 비하로 빠지게 되기 때문에… 


…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중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윤소희'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라고 생각하는 나도, ‘지금의 나’라고 생각하는 나도 사실은 내가 아닐 것이다. 그 모든 ‘나’가 메아리처럼 허공을 떠돌다 그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 바로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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