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채우는 사랑> 어느 독자의 고백
딸이 보려고 사둔 책을 엄마가 먼저 읽었습니다.
책을 구했으니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전화한 딸. 엄마는 그 딸에게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눈여겨본 적 있느냐고 묻습니다. 딸은 무슨 엉뚱한 질문인가 생각하다, 문득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습니다. 단 한 번도 슬픔을 드러내 본 적 없던 엄마. 그런 엄마가 에세이를 읽으며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것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낯선 엄마의 모습. 그저 글을 읽었을 뿐인데, 엄마의 어떤 숨어 있던 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전화를 끊은 딸은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의 숨어 있던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얼굴처럼 진의를 숨긴 채 웃음을 가장하거나 거짓 슬픔을 드러낼 줄 모른다.
정성 들여 빗어 내린 풍성한 머리채나 심혈을 기울여 손질한 뒷머리는 아마도 당신을 부르는 손짓일 것이다. 머리를 틀어 올리거나, 긴 머리채를 싹둑 잘라 드러낸 허연 목덜미는 당신 눈길의 수천 갈래 애무를 기다리는 간절함인지 모른다. 무방비한 채 드러낸 등은 어쩌면 당신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일지도.
반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가버리는 싸늘한 뒷모습은 식어가는 연애의 온도를 드러내는 것이리라. 그토록 냉정하게 사라지는 등은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는 연인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면, 그의 등 뒤로 두 손을 마주 잡아 보아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포옹한다는 건 그의 등 뒤로 두 손을 마주 잡는 것이다. 섬세한 손길로 더듬어갈 때, 비로소 등위에 점자로 새겨진 문장은 해독될 수 있다. 누군가의 등, 그 미세한 떨림을 읽는 일은 지극히 섬세한 손끝에 전 존재를 거는 집중을 요한다.
'뒷모습', 윤소희 <여백을 채우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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