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하고 만족도 높은 부부관계를 위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하고 이승복 어린이는 외쳤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나는 콘돔이 싫어요!”하고 외치고 싶다.
평생 잘 한 일을 딱 한 가지만 대 보라면 아이들을 낳아 키운 일을 꼽겠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딱 한 가지만 말해 보라면 임신이라고 답할 것이다. 생명을 잉태해 세상에 내어 놓는 일은 내 자신의 보잘것 없음과 관계 없이 경이롭고 위대한 일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스스로가 인간이기 보다는 짐승이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여보,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두 아이 출산 후, 남편에게 출산파업을 선언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힘들어 하던 내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아왔기에 남편은 딸을 원하는 자신의 바람을 포기하고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출산파업 선언이 순순히 받아들여졌음에도 여전히 우리 부부관계에는 빨간 불이 켜졌는데, 그것은 바로 콘돔 때문이었다.
나는 콘돔이 싫다. 콘돔이 성병을 줄이고, 여성의 지위와 권위를 향상시키는 등 세계사적으로 어마어마한 기여를 했다는 걸 부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취향으로 콘돔이 싫다.
일단 냄새가 싫다. 포장지를 벗길 때 나는 그 기분 나쁜 고무 냄새. 물론 딸기 향이나 포도 향 등 고무 냄새를 덮어 보려는 각종 시도가 있지만, 오히려 각종 향으로 덮힌 그 고무 냄새가 더 역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비건(Vegan) 인증을 받은 콘돔이 출시 되어 오직 식물성 원료만 사용하고 살정제, 탈취제 등 유해물질도 넣지 않고, 은은한 허브 향이 난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그건 분명 남편의 체취나 남편이 몸에 뿌린 향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침입자의 냄새일 뿐이다. (비건 콤돔 광고를 통해 콘돔 회사에서 토끼의 음부 안에 콘돔을 넣어 유해성 실험을 한다거나 우유에서 뽑아낸 단백질인 카제인을 넣어 콘돔을 만든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엄마, 나 이거 하나 사도 돼?"
종종 편의점이나 마트 계산대 앞 진열대에서 화려한 포장을 자랑하며 놓여 있는 콘돔 박스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사 달라는 아이들. 괜히 잘못한 것도 없이 얼굴이 벌게지며, “안 돼! 이따가 설명해 줄게.”하고 속삭이며 진땀을 빼던 순간들. 아이들이 사탕이나 초콜릿으로 착각하고 사고 싶어할 정도로 콘돔 포장은 화려해 지고, 콘돔 자체도 빨주노초파남보에 심지어 검정색까지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지만, 그런 요란한 디자인과 색깔이 섹스 자체를 싸구려로 느껴지게 한다. 두 사람의 영육이 결합하는 아름다운 관계가 요란한 침입자의 방해로 한낱 쾌락을 좇는 짧은 유희로 전락한다.
"콘돔 없이 섹스를 하는 여성들은 통상의 피임법으로 콘돔을 사용하며 성교를 하는 여성들보다 우울증을 현저하게 덜 앓았다. … 항상 콘돔을 사용한다고 응답한 여성들의 13% 이상이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콘돔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 여성들의 5% 응답률과 확연히 대조되는 수치이다."
(신디 메스턴, 데이비드 버스의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중)
무엇보다 콘돔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콘돔이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절정에 이르는 순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콘돔 없이 직접 사정할 때, 여성의 질벽을 통해 정액 속에 들어 있는 에스트로겐과 프로스타글란딘이 흡수 되어 여성의 기분을 향상 시켜준다는 과학자들의 설명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콘돔을 사용하면 섹스할 때 만족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격렬한 피스톤 운동보다 오히려 사정 후 정액이 질 속으로 퍼져들 때의 그 잔잔한 여진을 사랑하기에, 절정의 순간을 빼앗는 콘돔이 싫다.
“혹시 구멍 난 거 아니야? 옆으로 흘러나오면?"
콘돔의 피임률은 100%가 아니다. 피임의 실패율을 7.5~28.3% (두산백과) 또는 40% (간호학대사전)까지 보기도 해, 콘돔이 임신에 대한 불안을 줄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용 시 꼭 콘돔 두 개를 함께 끼운다는 사람이나 윗부분을 고무줄로 단단히 묶고 사용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콘돔 착용 과정에서 이미 성적 흥분은 상당 부분 사라지지 않을까.
“여보, 도저히 못 하겠어!"
결국 난 출산 파업에 이어 섹스 파업까지 선언했다. 남편이 정관수술을 하기 전에는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혹시 피임에 실패할 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싸구려 고무 냄새를 맡아가며, 절정의 순간마저 빼앗긴 그런 섹스라면 차라리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알았어, 내가 할게."
기혼부부의 5%만이 정관수술로 피임을 한다는데, 다행히 '착하고 부인을 많이 사랑하는 데다 용감하기 까지 한' 남편의 결단으로 우리 부부는 콘돔의 방해 없이, 둘만의 친밀하고 만족도 높은 잠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위에 열거한 콘돔이 싫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양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