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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22. 2020

익사만은 제외시켜 주세요 제발

단 하나의 피하고 싶은 죽음

장르소설 특히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청부살인뿐 아니라 청부 자살이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는 이들이 돈을 주고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일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때 받게 될 질문:  

“어떤 죽음을 원해요? 어떤 죽음은 피하고 싶어요?”  


마치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처럼 가볍게 묻는 질문. '전 딸기 아이스크림은 싫어하지만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좋아요' 하듯이 가볍게 대답해야 할 것 같은 그 질문에 나는 뭐라 답할까?' 제발 샹차이(香菜:고수)만은 빼주세요' 하듯 내 머릿속에는 피하고 싶은 단 하나의 죽음이 떠오른다. 물론 샹차이 말고도 익힌 당근도 싫어하고, 귀찮게 껍질을 벗겨 먹어야 하는 게나 새우 같은 해산물도 싫어하지만, 그런 건 답으로 잘 떠오르지 않듯이, 죽음에 관해서도 단 하나 피하고 싶은 죽음만이 떠오른다. 


“익사만은 제외시켜 주세요.” 


저기 저만큼, 선생님이 서 있는 저기까지만 헤엄쳐 가면 된다. 오른손을 저을 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입이 물 밖으로 나오면 숨을 쉬면 된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물 밖으로 간신히 얼굴을 뺐을 때 갑자기 파도가 쳐 짠물이 내 코와 입을 덮쳤다. 나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대신 짠물을 잔뜩 먹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서 있는 그곳까지 더 이상 숨을 쉬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발을 구르고 팔을 저어 나아갔다. 내 몸속의 산소는 점점 줄어들고,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다.  


아...  

Source: Pixabay


살았다. 중학교 때 무슨 해양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 정도 바닷가에서 합숙 훈련을 받으며 수영을 처음 배웠다. 마지막 날 바다에서 자유형으로 일정 거리를 헤엄쳐 통과해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는. 그 단 한 번의 지옥 같은 경험으로 나는 수영과는 담을 쌓았다가 직장인이 되어서야 생존을 위해 뒤늦게 수영을 배웠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수영장. 맑은 하늘과 평온한 분위기. 사람들은 깔깔거리기도 하며 즐거운 오후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자유형으로 유유히 헤엄치다가 어느 순간 내 발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때까지 멀쩡하게 수영을 하던 내가 꼬르르 물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가만히 힘을 빼고 떠 있으면 된다든지, 수영장 바닥을 힘껏 차고 올라오면 된다든지 하는 이론들은 소용없었다. 물에 빠졌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살기 위해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고, 결과적으로 꼬르르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분명 함께 갔던 지인들이 있었으나, 내가 물에 빠졌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역시 물속에서만은 죽고 싶지 않아요. 익사만은 제외시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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