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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20. 2021

혹독한 출간 여정: <여백을 채우는 사랑> 2

앗, 편집자가 괴물이 아니네!

2020년 2월, 코로나 19가 심해지자 베이징을 떠나 서울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드디어 그 ‘무시무시한’ 편집자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편집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출간 제의를 받은 지 5개월이나 되었을 때니, 목소리로만 만났던 편집자의 모습이 무척 궁금했어요.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자 심지어 마음이 설레기까지.


xx 전철역 3번 출구에서 저녁 6시.  


약속 시간 5분 전쯤 도착해 전화를 걸었어요. 받지 않는 거예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리기로 했어요. 약속 장소를 실내로 하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어요. 봄이 오기 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거든요. 찬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죠. 6시 정각에 다시 전화를 했지만, 또 받지 않는 거예요. 그동안 전화 미팅 때마다 거의 정확한 시각에 전화를 걸어왔기에 슬슬 걱정이 되었어요.  


'무슨 일이지?’  


마침내 전화가 왔어요.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6시를 3분 정도 넘긴 시각이었어요. 추위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긴장을 하고 있던 모양이에요.  


회를 드실래요, 고기를 드실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어요. 겨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인데, 왜 그리 어렵게 느껴지던지. ‘고기'라고 소심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었기에 따뜻한 불이 그리워 그렇게 대답했는데, 곧 후회가 되는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앉아 고기를 구워야 하다니. 그것도 나를 여러 번 울린 사람과 말이죠. 


가는 테의 안경을 쓰고 비쩍 마른 데다 몹시 예민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깃집 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어요. 키가 크고 피부가 흰 편이며 쌍꺼풀이 짙은 30대 남자. ‘아니, 저렇게 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내 눈물을 쏙 빼곤 했단 말인가?'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거예요.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괴물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편집자는 천천히 고기를 구워 주었고, 저는 그가 구워주는 갈빗살을 받아먹었어요. 체하면 안 되니, 고기를 천천히 꼭꼭 씹으면서요. 중국 생활이나,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런 걸 서로 묻고 답을 주고받았어요. 혈액형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둘 다 B형이에요. 어쩐지. 편집자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부드럽고 온유했어요.  


그 후로도 편집자 앞에서 눈물 흘린 적은 있지만, 예전처럼 그가 밉지는 않아요. 더 이상 전화 속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니라, 편집자도 나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가 고기를 얌전히 구울 줄 아는 B형 남자이고,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작가 하나하나를 대하는 편집자인지 이제는 아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렇게 꼼꼼하게 돕는 편집자가 세상에 많지 않다는 걸 잘 아니까요. 


시를 많이 읽으세요. 아니 당분간 시만 읽으세요.


앗, 이 주문은 제게 너무도 혹독한 주문이었어요. 책 읽는 건 중독에 가까운데, 더구나 서사가 있는 소설 등의 책을 안 읽고는 살 수가 없는데, 시만 읽으라니요. 정말 어쩌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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