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 일식의 위력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멀리서 본 우윳빛 동산은 한때는 먹고 마시고 웃고 울었을 사람들의 해골들이다. 피정복민들의 시채를 한 곳에 쌓아 두어 해골이 되도록 둔 것이다. 아직 완전히 썩지 않은 살점들이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는 뼈들도 눈에 띈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인상을 쓰는데, 등골이 서늘하다. 포악하기로 유명한 이들에게 잡혔다간 온갖 치욕을 당하고 결국엔 저 해골산 위에 던져져 까마귀 밥이 될 것이다.
찢기고 탈색된 튜닉 그리고 물고기의 독한 위산 때문에 탈색된 허연 팔과 다리. 자칫 기이한 내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거나 의심을 살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평범해 보이는, 프린지 장식이나 술이 없는 숄을 사서 둘렀지만, 매무새가 영 추레하다. 저 앞에 한 무리의 군인들이 지나간다. 짧은 튜닉 위에 갑옷을 입고 원추형 헬멧을 쓰고 허리에는 넓은 허리보호용 띠를 착용한 군인들은 그 화려한 위용이 호전적인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 그들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무릎이 달달 떨렸다.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 무리 속으로 몸을 숨긴다. 군인들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는 곳을 물색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들의 신을 위한 축제 기간인지 사람들마다 화려한 옷차림에 속살을 많이 드러내고 흥청망청 마시며 떠들고 있다. 무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신전 앞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단 위에 이제 열몇 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예쁘장한 남녀 아이가 서 있다. 화려한 술 장식이 되어 있는 숄과 튜닉을 벗어던지더니,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자세로 바꿔가며 미친 듯이 몸을 섞는다. 세상에… 벌건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피를 끓게 하는 자극적인 음악이 귀를 때리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마법에라도 걸린 듯 난교장에 몸을 던진다. 못 알아들을 소리로 중얼거리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난잡한 성교를 하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아무도 내게 시선을 주는 사람이 없다. 잘 됐다는 생각에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회개하시오! 니네베(Nineveh)*는 곧 멸망할 겁니다!”
작은 목소리로 두어 번 말하고 얼굴을 숙이고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저 놈 뭐야? 별 미친놈 다 있네.”
그 난리 속에서도 내 말을 들은 사람이 있는지 몇 사람이 욕하는 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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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꼴 보기 싫어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배를 탔던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몰아친 폭풍에 배가 뒤집히기 직전이 되자 달아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애써 모른 척하며 자는 척했지만 제비뽑기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뱃전에 부딪쳤다. 귀신이 울듯 바람 소리가 요란한 바다로 몸이 던져졌다. 버둥거리며 몇 번인가 머리가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숨을 쉬려다 몇 번인가 짠물을 먹기도 했다. 터질 듯한 고통으로 폐를 쥐어뜯으며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시큼하고 독한 냄새에 잠시 정신이 들었다. 눈이 따가워 뜰 수가 없다. 두 손을 허우적거리는데 작은 물고기들의 미끄러운 비늘이 느껴진다. 뭐 때문에 허둥대는지 작은 물고기들이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헤엄치느라 자꾸만 손이고 팔이고 부딪힌다. 거친 물살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간다. 미끈미끈하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는 듯했다. 독한 가스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웠고 어둠과 공포로 여러 번 정신을 잃었다. 몇 번인가 정신이 들 때마다 기도했다.
구원은 당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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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곳까지 달려와 겨우 숨을 고르며 주저앉았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진다. 기온이 뚝 떨어졌는지 서늘한 기운에 팔다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아직 해가 지려면 먼 시간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튜닉 소매로 여러 번 눈을 문질렀다. 검은 태양이 나타나 본래의 태양을 먹어버리고 있다. 마침내 모두 먹어치우자, 주위는 한밤중처럼 캄캄해졌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태양 주위로 이글거리는 빛은 태양이 검은 태양 안에서 녹아버리고 있다는 증거인가. 검은 태양을 바라보자 내 몸과 영혼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모든 것을 빨아들여 ‘무無’로 녹여낼 것 같은 무시무시한 어둠이다. 며칠 전 바다에 뛰어든 후에 겪었던 어둠의 공포가 다시 밀려왔다.
구원은 당신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걸까?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어둠이 물러갔다. 검은 태양이 본래의 태양을 토해내고 사라졌다. 갑자기 돌아온 빛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사람들이 허둥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저기서 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상복을 입고 엎드려 울며 옷을 찢는다.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망한다는군.”
“자네도 들었나? 신전 앞에 예언자가 나타났었다는데…….”
“내 동생이 봤다는데, 사람이 아니라 천사였다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목소리를 낮춰 예언에 관한 소문을 쑥덕거린다.
박넝쿨 아래 몸을 눕혔다.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다. 짐승처럼 날뛰던 난교 현장이 떠올랐고, 내 동족들도 섞여 있을 해골 동산도 떠올랐다. 치가 떨렸다. 회개하라고 두어 번 소리치긴 했지만, 정말 그들이 무릎 꿇길 바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못 듣기를, 듣고도 무시해 주길 내심 바랐다. 그런데 너무도 순식간에 그들은 엎드려 가슴을 찢은 것이다. 어이없게도…
구원은 당신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내 목소리는 내 귀에도 소름이 끼치도록 차갑다.
*아시리아 (Assiyria) 제국의 가장 큰 도시.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티그리스 강 상류를 중심으로 번성한 고대 국가.
(이 글은 구약 성경 ‘요나 서’를 읽고 상상을 더해 재구성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