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첫사랑'이라는 말, 절대 하는 게 아냐

목소리를 잃은 인어왕자

by 윤소희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미나는 한주의 첫사랑이었고, 한주는 미나를 소중히 여겼다. 그걸 아는 미나는 유리구슬을 손에 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조금 우쭐했고, 유리구슬 덕분에 쥐어진 권력을 휘두르며 희열을 느꼈다.


“한주야. 너랑 있으면 재미있긴 한데, 설렘이 없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툭 던져버린 미나와 달리 한주는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어?”

손바닥 위에 놓인 유리구슬을 톡톡 건드려보던 미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집게손가락을 툭 튕겨 유리구슬을 맞혔다.

“글쎄. 좀 튀어나온 턱도 좀 그렇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어째 설레질 않네.”


그 후 오래지 않아, 한주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미나가 장난 삼아 던진 돌에 약간 주걱턱이었던 한주는 아프게 맞았던 것이다.

“나 내일 수술하러 들어가. 며칠은 말도 할 수 없다니, 통화도 못할 거야.”

“정말? 며칠이나 통화를 못한다니 심심하겠다.”

주어를 빼 버린 애매모호한 문장은 사실 미나 자신을 걱정한 말이었다. 미나는 심지어 한주가 무슨 수술을 받으러 가는지도 묻지 않았다.


미나는 다음날 습관처럼 한주에게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이 평소보다 오래 걸리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전화해도 못 받는다고 했지.”

몹시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한주야!”

“음…”

“뭐, 뭐라고?”

“음음…음…”

수술 후 간신히 마취에서 깨어난 한주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열심히 미나와 소통하려 애썼지만, 한주의 손짓 발짓을 볼 수 없는 미나는 답답하기만 했다. 한주의 신음이 뭘 말하는 건지 그토록 오랫동안 한규를 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미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분량의 할 말들이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을 들어줄 한주가 없다니... 매일 시원하게 변을 보다가 하루아침에 변비에 걸린 것처럼 미나는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때 잠시 알고 지내던 세현을 만났다. 미나가 기억하는 세현답지 않게 세현은 그날 저녁 미나에게 고백을 한다.

“너 내 첫사랑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좋아했어.”


2주 정도 입원 기간을 마치고 한주가 돌아왔을 때, 한주 눈에 세현과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미나가 보였다. 오직 미나를 위해 양악수술을 하느라 며칠 동안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며 엄청난 고통을 감수했는데, 새롭게 바뀐 얼굴을 보고 기뻐해 줄 거라 믿었던 미나는 이미 떠났다. 다른 유리구슬을 손에 쥐러.


한주와 미나는 그토록 오랜 시간 수없이 말을 섞었지만, 말이 사라지자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에 대한 왕자의 관심이 사라진 것처럼 미나의 관심 역시 사라졌다. 미나에게 필요한 건 말이었지, 손짓 발짓이 아니었으니까.


한주는 양악수술로 좀 더 세련된 얼굴과 함께 '네가 내 첫사랑'이라는 고백 따위는 절대 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물론 그 교훈은 다시 써먹어볼 수 없는 교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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