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노래하지 않게 된 예쁜 카나리아와

더 이상 웃을 수 없는 우스꽝스럽지만 슬픈 피에로

by 윤소희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실화가 아닌 허구입니다.)


더 이상 노래하지 않게 된 예쁜 카나리아와 더 이상 웃을 수 없는 우스꽝스럽지만 슬픈 피에로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그녀의 발등에 얼굴을 부비기도 하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갖은 재롱을 다 부렸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예전에 어떻게 움직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맛있게 핥아먹던 우유마저 어떻게 먹는 건지 잊어버린 듯 목에 걸려 캑캑대기까지 하고. 열심히 재롱을 부려보려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발이 꼬여 주저앉고 말았다.


새로운 주인 아가씨를 기쁘게 하지 못해 그동안 받던 관심마저 사라지면 어떡하나. 가슴 한 구석이 뜨겁고 머리가 핑 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내 몸짓이 이상하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는 있지만 그녀의 눈은 공허하다. 아마도 그녀는 뭔가 다른 걸 보고 있는 거겠지. 나도 모르게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군다.


따뜻하게 한번 쓰다듬어주지도 않고 안아준 적도 없지만, 새로운 주인 아가씨를 사랑한다. 전 주인에 의해 창 밖으로 던져진 후 이리저리 헤매다가 문이 열린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도 그녀는 저 공허한 눈빛 그대로였다. 그때 난 이미 너무 지쳐 있었고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발을 옮길 힘도 없었다. 전 주인처럼 날 어딘가에 내동댕이 친다 해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내게 우유를 가져다주고 가만히 내 곁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난 염치 불고하고 우유를 다 먹어치우고 기분이 좋아져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잠이 깨었을 때 그녀는 저쪽 구석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 곁으로 다가가 전 주인에게는 보인 적도 없는 재롱을 피웠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날 바라보던 그녀는 그저 한번 입을 열었을 뿐이다.

“너도 참 예쁜 고양이구나”

난 그 말 한마디에 너무 기뻐서 언젠가 그녀가 기쁘게 활짝 웃는 날을 꼭 보리라 마음먹었다. 내 귀여운 재롱과 사랑으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그렇게 그녀와 함께 살게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날 바라보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고 그녀의 미소에 조금씩 생기가 묻어난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나는 잠자는 것도 잊고 그녀를 위해 춤을 추었다.


그런데 어젯밤.

“나비야”

새로운 주인이 나를 부른 것일까? 바로 달려가 그녀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아니, 넌 나비가 아니구나.”

...

“나비가 집을 나간 지 백일이 되었어. 여기 내 눈 밑에 난 흉터 보이니? 뭣 때문에 토라졌는지 내가 안아주려고 하자 내 얼굴을 이렇게 심하게 할퀴고는 집을 나갔단다. 얼굴에서 피가 철철 흘렀었는데.. “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는 그녀를 본 일이 없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피는 곧 멎었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 계속 흐르는 눈물 때문에 상처가 짓무르고 쉽게 나을 수가 없었지. 그렇게 자꾸 울면 얼굴에 큰 흉터가 남을 거라 걱정들 했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 도대체 우리 나비가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너는 알겠니? 그 이유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진 않을 텐데... 이젠 벌써 백일 전 일이야. 절대 아물 것 같지 않던 상처도 이제 다 아물고, 내게 남은 건 눈 아래 이 흉터뿐이야. 너도 이게 흉측하게 보이니? 하지만 나비가 내게 남긴 건 이 흉터뿐인 걸”


입을 다문 그녀가 자신의 흉터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아니 아마도 그녀의 나비를 쓰다듬고 있었으리라. 난 나의 가슴팍에 난 흉터를 고개 숙여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보자마자 징그럽다며 인상 쓰고 고개를 돌려버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비틀거리는 주인이 혹시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잔뜩 걱정하고 주위를 맴돌다가 주인이 던진 포크에 찢긴 상처. 전 주인은 왜 그토록 날카로운 포크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걸까? 분명히 날 찌르기 위함은 아니었을 텐데... 주인의 울음소리에 걱정하느라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고 상처를 혀로 핥았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그 포크를 입으로 물어 창 밖으로 던졌다. 포크가 주인에게 쓰이기를 원치 않았으니까…


가슴팍에 난 상처를 보고 있자니 전주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늘 헝클어진 머리에 술에 절어 비틀거렸지만 기품 있고 아름다운 사람. 이젠 그의 말을 이해하고 가끔 화풀이도 할 수 있는 내가 없어졌으니 그는 얼마나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제야 새로운 주인 아가씨의 그 공허한 눈빛이 읽힌다. 그 눈 밑의 흉터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같은 흉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녀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졌다.


나는 안다. 그녀는 내 사랑스러운 점들을 조금씩 알아가며 언젠가는 아주 활짝 웃게 될 것이다. 그전에 느껴본 적 없는 그런 행복감도 느끼게 되겠지. 그리고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서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한 가지만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것도 역시 사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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