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용 식탁
새해 첫날 아침, 그녀는 늘 일어나는 그 시각에 눈을 떴다. 눈이 떠졌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협탁 위로 손을 더듬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밤 사이 놓친 메시지나 이메일이 없는지 간단하게 체크한다. 휴대폰 빛이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새벽의 공기를 가만히 들이마신다. 코끝에 살짝 감도는 향기. 나쁘지 않은데?
늘 마시던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린다. 커피메이커가 내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요란하다. 그녀가 집요한 시선으로 커피메이커를 노려보자, 요란하던 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그녀는 늘 마시던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아 남편의 서재로 들어간다. 불을 켜는데 잠시 깜박이다 들어온 빛이 그녀의 눈을 톡 쏘는 바람에 그녀는 움찔하며 휘청했다. 다행히 출렁이던 커피는 넘치지 않았다. 차츰 빛이 눈에 익숙해진다. 흠, 어제보다 기온이 더 떨어진 건가? 그녀는 어깨에 두른 두터운 숄 앞섶을 여민다.
늘 하던 대로 남편이 밤새 어질러 놓은 서류들을 정리하려는데, 어쩐 일인지 책상이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 말쑥하다. 결혼 전 남편의 비서였던 그녀는 결혼 후에도 비서처럼 남편을 도왔다. 정리하는 습관이 없는 남편의 책과 서류들을 정리하고, 스케줄을 정리해서 잊지 않도록 확인시키고, 남편의 비서조차 놓치고 마는 사소하고 세세한 것들을 꼼꼼하게 챙겨준다. 이런 그녀의 내조 때문인지 그녀의 남편은 자주 뭔가를 빠뜨리거나 잊었고, 점점 그녀에게 의존하는 듯 여겨졌다. 평소보다 정리가 일찍 끝나자 갑자기 그 공간이 어색해졌다. 여러 차례 책상에 놓여 있는 시곗바늘을 확인하지만, 오늘따라 바늘이 늑장을 부린다. 난방 기기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서늘한 기운이 좀체 가시질 않는다. 잘 정돈된 책상 위의 책들이, 서류가, 펜과 기타 문구들이, 남편의 안경이, 노트북이… 돌아앉은 뒷모습처럼 차다. 그녀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커피만 홀짝이다 평소보다 일찍 서재를 나왔다. 그때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의 진동이 울린다.
'별 일 없는 거죠?'
그녀는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아무런 대꾸 없이, 그 메시지를 삭제한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의 육인용 식탁. 그녀의 남편은 친한 친구 둘과 부부 모임을 격월로 갖고 있다. 연휴 끝나고 2주간 장기 출장이 잡혀 있는 관계로 휴일임에도 굳이 1월 1일에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고, 다행히 다른 두 친구 내외도 흔쾌히 동의했다. 주빈인 그녀의 남편과 그녀가 길게 놓인 식탁 양쪽 끝에 마주 앉고, 나머지 두 부부가 한쪽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 부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그녀는 모임 때마다 일부러 더 젊어 보이게, 아직은 탄력이 있는 몸매가 잘 드러나도록 코디에 신경을 쓴다. 오늘 아침 발견한 새치 하나를 뽑으며 혹시라도 숱이 적어 보일까 머리 드라이도 공들여했다. 목이 깊이 팬 실크 소재의 검은색 원피스에 지난 크리스마스에 남편에게 선물로 받은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한 그녀는 오늘 저녁에도 단연 돋보였다.
그녀는 남편의 오른쪽에 앉은 준호 씨 와이프에게 눈인사를 하다 말고, 백에서 서둘러 스카프를 꺼내 목에 둘렀다.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 위로 반짝이는 펜던트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다 남편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남편은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그녀는 뭔가 항의라도 하는 듯한 시선을 남편에게 보냈으나, 남편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 표정에 변화가 없이 대화를 지속한다. 웃음소리와 함께 식탁 위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혼자 얼굴이 벌게진 그녀는 웨이터에게 얼음물을 달라고 해 벌컥 들이킨다. 그녀 왼편에 앉아 있는 준호 씨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 대화 속에서 슬며시 얼굴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묻는다.
"별 일 없는 거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려 지훈 씨 와이프와 대화를 이어가 보려는데, 그녀의 귀에는 아무런 대화 내용도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은 여전히 자연스럽게 식탁 위의 대화를 리드하고 있다. 간간이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며… 남편의 오른편에서는 준호 씨 와이프의 펜던트 빛이 은은하게 퍼지고, 그녀의 왼편에선 준호 씨의 은근한 시선이 그녀를 좇는다.
누군가 바람을 피웠다.
이 화려한 식탁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누군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