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_나도작가다공모
2011년 11월 1일 새벽 3시.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날짜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 날짜와 시각을 잊을 수 없는 건 물론 글쓰기가 내게 소중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더 큰 이유가 있다.
남편은 한때 중국에서 잘 나가던 벤처사업가였다. 결혼 직후 시작한 사업이 잘 되어 중국 정부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하고, 포브스(Forbes) 등 언론매체에 성공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쑥쑥 커가는 사업을 보며 우리 부부는 점점 더 큰 꿈을 꾸고 더 많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중국 정부의 법 규정 변화로 사업체도 날리고 빚더미에 앉게 될 위기를 맞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숨어다니다 남편이 채권자들에게 붙잡히기도 했고, 돈을 구하러 떠나는 남편 대신 아이들과 내가 인질로 잡히기도 하는 끔찍한 일들이 이어졌다. 2011년 11월 1일은 남편이 다시 직장을 구해 첫 출근을 하던 날, 거의 2년 만에 가정에 수입원이 생긴 날이다. 한바탕 무시무시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한시름 돌릴 수 있게 되자 갑자기 글이 미치도록 쓰고 싶었다.
그날 새벽 세 시, 혹시라도 아이들이 깰까 살금살금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당시 만 두세 살이던 연년생 사내아이 둘을 키우느라 낮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시간. 하지만 막상 그 낯선 시간에 홀로 깨어 있어 보니, 하루 종일 분주히 몸을 움직이면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 자신의 존재를 비로소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9년째 새벽 세 시면 일어나 글을 쓰는 습관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힘든 일을 겪었으니 글로 나 자신을 치유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폭풍과 격랑 속에서 막 빠져나왔을 때는 내가 힘들었다는 것도, 아팠다는 것도, 억울하고 상처 받았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관계없어 보이는 내용의 글을 쓰면서, 조금씩 나도 모르던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고, 그동안 덮어두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어루만져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당시 내게 글쓰기는 무의식 중에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 보려는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나가는 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으니까.
"모든 슬픔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한 견딜 만하다."
카렌 블릭센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인 카렌 블릭센 역시 슬픔과 상처가 많았다. 결혼 후 아프리카라는 먼 곳으로 떠나 극심한 외로움을 겪었고 바람둥이 남편 덕에 걸린 매독, 이혼, 커피농장의 실패, 사랑하던 애인의 죽음 등을 겪었지만, 그녀는 글을 쓰면서 그 모든 것을 소화해냈다. 오히려 고통을 승화시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녀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상한 마음마저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있는 줄도 몰랐던 상처를 발견하고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그 상처가 발산하는 희미한 빛에서 아름다움마저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기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 한 권 출간해 보기도 전에 작가의 직업병이라는 허리디스크로 1년 정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돈이나 명예는커녕 오히려 고질병만 갖다 준 글쓰기가 뭐가 그리 좋은지, 누워서 꼼짝할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책을 고무줄로 묶어서 잡아 주거나, 노트북을 올려놓고 누워서 쓸 수 있도록 각도 조절이 가능한 환자용 랩탑 테이블에 의지해 1년 가까이 글을 썼다. 조금씩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책상 위에 작은 밥상 하나를 올려 두고 서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3년 전 책 한 권을 겨우 출간했고 지금은 두 번째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넘었다는 걸 고려하면 세상에 내어 놓기에는 분명 초라한 성과다. 글쓰기를 통해 부나 명예, 성공 같은 '네 잎 클로버’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대신 ‘세 잎 클로버’를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사실 행복은 내가 행운을 찾아 헤맬 때도 세 잎 클로버처럼 늘 내 언저리에 가만히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예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감각 기관들을 활짝 열어놓게 되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연주가 살갗을 가만히 쓰다듬는 걸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아주 미세한 맛 차이를 느끼려고 혀를 살살 굴리다 보면 음식을 만든 이의 기분마저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용기를 꺼내쓸 수 있게 되자, 아마추어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기도 하고, 멀리 낯선 곳으로 주저 없이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그 전에는 알아보지 못했던 수많은 '세 잎 클로버'들이 가만가만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걸 알아챌 수 있는 내가 좋다.
오늘도 새벽 세 시면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그날그날 발견한 '세 잎 클로버'를 문장에 담는다. 아마 글을 쓰면 쓸수록 눈은 침침해지고, 허리와 목, 어깨가 점점 더 피로해질 것이다. 거기다 ‘작가의 벽’이란 새하얀 공포까지 마주친다면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글을 쓰고 싶다. 내게 와준 소중한 '세 잎 클로버'들을 문장에 담아 아직 자신의 '세 잎 클로버'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에게 슬며시 건네주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