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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24. 2020

오늘도 새벽 세 시면 일어나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_나도작가다공모


2011년 11월 1일 새벽 3시.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날짜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 날짜와 시각을 잊을 수 없는 건 물론 글쓰기가 내게 소중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더 큰 이유가 있다.


남편은 한때 중국에서 잘 나가던 벤처사업가였다. 결혼 직후 시작한 사업이 잘 되어 중국 정부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하고, 포브스(Forbes) 등 언론매체에 성공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쑥쑥 커가는 사업을 보며 우리 부부는 점점 더 큰 꿈을 꾸고 더 많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중국 정부의 법 규정 변화로 사업체도 날리고 빚더미에 앉게 될 위기를 맞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숨어다니다 남편이 채권자들에게 붙잡히기도 했고, 돈을 구하러 떠나는 남편 대신 아이들과 내가 인질로 잡히기도 하는 끔찍한 일들이 이어졌다. 2011년 11월 1일은 남편이 다시 직장을 구해 첫 출근을 하던 날, 거의 2년 만에 가정에 수입원이 생긴 날이다. 한바탕 무시무시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한시름 돌릴 수 있게 되자 갑자기 글이 미치도록 쓰고 싶었다.


그날 새벽 세 시, 혹시라도 아이들이 깰까 살금살금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당시 만 두세 살이던 연년생 사내아이 둘을 키우느라 낮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시간. 하지만 막상 그 낯선 시간에 홀로 깨어 있어 보니, 하루 종일 분주히 몸을 움직이면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 자신의 존재를 비로소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9년째 새벽 세 시면 일어나 글을 쓰는 습관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힘든 일을 겪었으니 글로 나 자신을 치유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폭풍과 격랑 속에서 막 빠져나왔을 때는 내가 힘들었다는 것도, 아팠다는 것도, 억울하고 상처 받았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관계없어 보이는 내용의 글을 쓰면서, 조금씩 나도 모르던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고, 그동안 덮어두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어루만져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당시 내게 글쓰기는 무의식 중에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 보려는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나가는 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으니까.


"모든 슬픔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한 견딜 만하다."

카렌 블릭센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인 카렌 블릭센 역시 슬픔과 상처가 많았다. 결혼 후 아프리카라는 먼 곳으로 떠나 극심한 외로움을 겪었고 바람둥이 남편 덕에 걸린 매독, 이혼, 커피농장의 실패, 사랑하던 애인의 죽음 등을 겪었지만, 그녀는 글을 쓰면서 그 모든 것을 소화해냈다. 오히려 고통을 승화시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녀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상한 마음마저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있는 줄도 몰랐던 상처를 발견하고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그 상처가 발산하는 희미한 빛에서 아름다움마저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기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 한 권 출간해 보기도 전에 작가의 직업병이라는 허리디스크로 1년 정도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돈이나 명예는커녕 오히려 고질병만 갖다 준 글쓰기가 뭐가 그리 좋은지, 누워서 꼼짝할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책을 고무줄로 묶어서 잡아 주거나, 노트북을 올려놓고 누워서 쓸 수 있도록 각도 조절이 가능한 환자용 랩탑 테이블에 의지해 1년 가까이 글을 썼다. 조금씩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책상 위에 작은 밥상 하나를 올려 두고 서서 글을 쓰기도 했다.  


책상 위에 밥상을 놓은 서재 (좌), 환자용 랩탑 테이블 밑에 누운 막내 아들 (우)


그런 과정을 거쳐 3년 전 책 한 권을 겨우 출간했고 지금은 두 번째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넘었다는 걸 고려하면 세상에 내어 놓기에는 분명 초라한 성과다. 글쓰기를 통해 부나 명예, 성공 같은 '네 잎 클로버’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대신 ‘세 잎 클로버’를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막내아들이 선물해준 세 잎 클로버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사실 행복은 내가 행운을 찾아 헤맬 때도 세 잎 클로버처럼 늘 내 언저리에 가만히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예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감각 기관들을 활짝 열어놓게 되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연주가 살갗을 가만히 쓰다듬는 걸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아주 미세한 맛 차이를 느끼려고 혀를 살살 굴리다 보면 음식을 만든 이의 기분마저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용기를 꺼내쓸 수 있게 되자, 아마추어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기도 하고, 멀리 낯선 곳으로 주저 없이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그 전에는 알아보지 못했던 수많은 '세 잎 클로버'들이 가만가만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걸 알아챌 수 있는 내가 좋다.  


오늘도 새벽 세 시면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그날그날 발견한 '세 잎 클로버'를 문장에 담는다. 아마 글을 쓰면 쓸수록 눈은 침침해지고, 허리와 목, 어깨가 점점 더 피로해질 것이다. 거기다 ‘작가의 벽’이란 새하얀 공포까지 마주친다면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글을 쓰고 싶다. 내게 와준 소중한 '세 잎 클로버'들을 문장에 담아 아직 자신의 '세 잎 클로버'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에게 슬며시 건네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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