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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03. 2021

개, 돼지의 나라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

편견에 갇혀 있는 한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

베이징에서 책을  '베이징 작가'가 되고 보니한국에서 책을 팔아야 하는 작가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아요. 코로나 19 때문에 한국에 들어가 홍보할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

아시겠지만 중국에 관한 뉴스나 글은  내용과 관계없이 덮어놓고 악플이 달리죠.

짱깨떼 놈, 짜장 등의 말을 넘어서 요즘에는 미개극혐파렴치 까지


윤소희 <여백을 채우는 사랑> 북토크 피피티 화면

 

연암 박지원 선생이 살던 18세기에도 분위기는 비슷했던  같습니다.

청나라의 변발을 보고 조선 선비들은 돼먹지 못한 오랑캐라돼지니 상종하지 말자며 덮어 놓고 무시했죠.

여러분열하일기  아시죠?

박지원 선생이 44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당시 청나라인 중국 여행을 하고  여행기인데요.

거기에 여러분  아시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제일 장관은  기왓조각과  똥덩어리에 있다.”

 

중국에서 보고  가장 장관이 뭐였냐는 질문에 보통 사람들은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산해관이나 끝없이 넓은 들판 같은 평이한 답을 합니다그리고 소위 지식인들은 돼지 나라에   뭐가 있냐고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원 선생은 깨진 기왓조각도 버리지 않고 마당에 무늬를 이어 꽂아 놓아 미관상도 아름답고 비가 와도 진창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나짐승의 똥 부스러기마저도 그냥 버리지 않고 팔각육각  다양한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아 거름으로 쓰는 모습에서 앞선 문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물론 박지원은 ‘실사구시 정신으로 그런 말을  거겠지만글을 쓰는 입장에서 박지원 선생의 그런 태도야 말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어요.

좁은 사회나 공동체에서도 편 가르기나 혐오를 많이 접하는 요즘인데요.

변발 보기 흉하다오랑캐다 하는 편견에 갇혀 있는 한, 우리는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박준 시인의  제목처럼

글을 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가 글을 쓰는 자세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있다면 그만큼의 여백이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윤소희 <여백을 채우는 사랑> 북토크


위 글은 <여백을 채우는 사랑> 북토크 클로징으로 했던 말입니다. 한국에서 중국이라면 '짱깨' '떼 놈'하며 덮어놓고 악플을 다는 것처럼, 베이징에 있는 작은 교민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동포들과의 관계에서 비슷한 풍경을 보고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하던 중 마침 책상에 쌓여있던 <열하일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편견과 혐오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는 걸 다시 깨달으며 박지원 선생님의 일화로 북토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읽고 쓴다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아주 좁은 '여백'이라도 만들 수 있기를 여전히 소망합니다.


박지원 <열하일기>, 고미숙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그리고 <여백을 채우는 사랑>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대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에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민가에서 담을 쌓을 때 어깨 높이 위쪽으로는 깨진 기와 조각을 둘씩 짝지어 물결무늬를 만들거나, 혹은 네 조각을 모아 쇠사슬 모양을 만들거나, 또는 네 조각을 등지어 옛날 노나라 엽전 모양처럼 만든다. 그러면 구멍이 찬란하게 뚫리어 안팎이 서로 마주 비추게 된다 깨진 기와 조각도 버리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천하의 무늬를 여기에 다 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하여 뜰 앞에 벽돌을 깔 형편이 안 되는 집들은 여러 빛깔의 유리기와 조각과 시냇가의 둥근 조약돌을 주워다가 꽃, 나무, 새, 짐승 모양을 아로새겨 깔아 놓는다. 비올 때 진창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기와 조각도 자갈도 버리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 애 천하를 여기에 다 그려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똥오줌은 아주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거름으로 쓸 때는 금덩어리라도 되는 양 아까워한다. 그래서 길에다 잿더미 하나도 버리지 않으며, 말똥을 줍기 위해 삼태기를 받쳐 들고 말 꼬리를 따라다닌다. 똥을 모아 네모반듯하게 쌓거나, 혹은 팔각으로 혹은 육각으로 또는 누각 모양으로 쌓는다. 똥덩어리를 처리하는 방식만 보아도 천하의 제도가 다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겠다.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중


“기와 조각과 똥오줌, 가장 낮고 천한 것에서 가장 깊고 근원적인 것을 찾아내는 이 놀라운 통찰력은 ‘북벌 대 북학’이라는 이분법의 배치를 간단히 전복해 버린다. 그의 문명론이 단지 이용후생에 머무르지 않고 정덕이라는 드높은 가치를 추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미숙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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